
W.MOMO
*커미션 글입니다
*드림글입니다
파도를 거스르고 나아가는 자들은 결코 자비롭지 않았다.
악마의 열매를 먹은 것도 아닌데 유독 기이한 존재들이나 용납할 수 없을만큼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으레 당연하다는 듯 거추장스러운 시선과 추잡한 욕망이 덕지덕지 붙기 마련이었으니. 뉴게이트는 오늘도 자신을 향해 없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엉덩이를 흔드는 하찮은 녀석들과 세치 혀를 휘두르며 온갖 추문들을 퍼나르는 해적들을 천박하다는 듯 혀를 차며 내려다보았다.
압도적인 무력과 그에 반비례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괴이한 면에서 자비로운 뉴게이트. 막장에 가까운 해적단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얻어낸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상식적인 인간'이라는 호칭은 이런 날파리들이 과하게 꼬이기 마련이었다. 차라리 자신도 무관심으로 일관할 것을 그랬나. 뉴게이트의 짧은 후회가 뒷갑판에서 여유롭게 있을 누군가를 향해 아스러히 퍼졌다.
그리고 그 뒷갑판에는 예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한 사람ㅡ에스프레소, 일명 커피가 앉아있었다. 피와 시체, 해골이 나뒹구는 것이 더 당연해보이는 풍경을 사방에 두고선 홀로 고고하게 앉아 티테이블까지 챙긴 귀족같은 괴짜.
하얀색의 테이블보는 복잡하게 얽혀 눈꽃결정과 같은 모습을 만들어냈으며 그 위에 올려진 흰 도자기 잔에도 섬세하고도 깨끗한 장식이 새겨져있었다. 안에 담겨있는 지독한 내용물을 풍미깊은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머금었다가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긴 커피의 손짓이 달그락, 기분좋은 다기 소리를 내며 떨어졌을 때 소소한 비극은 퍼레이드의 시작을 알리듯 화려하게 울렸다. 다소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러니까 따지자면, 해적답게 선장의 우렁찬 소집 명령으로 시작되었다는 뜻이었다.
"커피, 뉴게이트!! 당장 선장실로 와!"
아무리 이곳이 막장이며 동료살해조차도 크게 혼내지 않고 도리어 부추기는 곳이라 하여도 가장 기본적인 룰은 있었다. 선장의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한다. 이는 단순히 그가 자신의 우두머리여서 아닌, 그저 지키지 않으면 즉시 죽음으로 되돌아오는 가혹한 대가 때문이었다.
미간을 좁히며 성가시다, 여실하게 드러내는 뉴게이트와 달리 표정까지도 평온하게 갈무리한 커피의 우아한 걸음거리가 괴기스러울 정도로 기묘한 하모니를 이루어내며 선실의 복도를 또각또각, 울리었다. 마치 여명의 종소리처럼 울리는 발소리에 선장의 호출을 알아차린 선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필사적으로 시선을 땅에 박아넣어 그들이 가는 길을 감히 방해하지 않았다. 비단이 깔려진 길을 걷는 것처럼 부드럽고 곧은 걸음과 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둔탁한 발소리가 멈춘 곳은 선장의 방이었다.
"들어와."
선장의 명령은 절대적. 뉴게이트의 손이 벌컥 선장실의 문을 열어젖히자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지긋하게 앉아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선장ㅡ지벡이 있었다. 커피가 곱게 선장실의 문을 닫자마자 지벡이 펼친 지도가 툭, 굴러와 뉴게이트와 커피의 신발 앞에 부딪혀 멈춘다. 펼쳐진 지도 위에 올려져있는 빼곡한 저택과 농장, 그리고 광산 등의 위치를 표시한 마크들이 성의없이 그어져있었다. 둘의 눈이 면밀하게 그것을 살핀 후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지벡의 입꼬리가 이전과 달리 사납게 굳어있는 상태였다.
기분이 더러운 상태로군. 빠르게 눈치챈 커피가 손을 나비떼로 변형시켜 지도를 곱게 들어올리자, 날카로운 핀이 가볍게 지도의 정중앙을 뚫는다. 그곳에는 선명하게 그어진 붉은색의 X 표시에 붕대 속에서 눈썹을 쑥 밀어올리자, 선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곳에서 '바람을 조종하는 보물'을 가져와라. 명령이다. 시간은 3개월을 주지. 이상."
그저 그것이 목적이었다는 듯 그대로 고개를 돌려 들고있던 서류에 시선을 옮기는 선장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본 뉴게이트가 반박하려던 찰나 커피의 손이 뉴게이트의 옷자락을 붙잡고 느릿하게 뒤로 물러선다. 기분이 오락가락할 때의 선장은 그 무엇보다 변칙적이다. 이럴 때에는 알아서 사리는 것이 답임을 왜 모르는 것처럼 굴지? 커피의 말이 느릿하게 뉴게이트의 견문색을 타고 흘러들어가고서, 그는 입술을 깨물고 순순히 커피의 손끝에 자신의 방향을 맡겼다.
"바로 출발할건가?"
"그러지. 3개월은 생각보다 짧으니."
고아하게 수족들에게 아무 배나 가지고 오라 손짓한 커피의 모습을 비추던 금안이 느릿하게 침잠한다. 그의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해놓고선 감히 약하다고 평할 수 없었으나ㅡ 해적들의 방식이라고 하기에는 몹시도 고상한 모습이었으므로. 뉴게이트의 염려가 가을의 단풍처럼 서서히 커피의 발목을 붙든다.
"방식은 어떻게 할거지?"
"따로 하도록 하지. 뉴게이트, 자네는 힘으로 밀어붙이게나, 나는 정보를 찾아보도록 하지."
"좋군, 그리하지."
곧장 그대로 몸을 돌려 배에 오른 뉴게이트의 배가 신속하게 먼저 앞서가는 것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커피는 온 몸을 나비로 화해 허공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수십마리의 나비가 차르르, 보석과 큐빅끼리 부딪히는 듯 영롱한 소리를 자아내며 해수를 거닐고 사방으로 퍼졌던 오랜 비행이 멎은 것은 그들이 목적지로 삼았던 '바람을 조종하는 보물', 그것이 있는 곳이었다.
선장이 겨우 그 정도의 헛바람에 속아넘어갈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면 분명 이곳에 있겠지. 커피는 한숨을 내쉬며 선장의 머저리 같은 명령에 다시 한번 짙은 회의감을 느껴야만 했다. 물론 뱃사람인 이상 해풍을 조종할 수 있다는 보물에 눈이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진리였으나, 커피는 아쉽게도 자신이 뱃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이 또한 그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아마 숱한 인원들 중에서도 가장 믿음직한 둘을 뽑아 보낸 것이겠지. 적어도 커피의 생각으로는, 뉴게이트와 자신은 객관적으로 선장을 속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뉴게이트는 속이느니 차라리 정면에서 직접 달려들어서 싸우고 쟁취해내는 스타일이었고 커피 본인은 선장의 의견에 반하는 것이 제게 꽤 깊은 손해임을 알았고 썩 나쁘지 않은 상황에 빠져나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그저 원하는만큼 머무르겠지. 꽃의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나비가 자리를 뜨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투명한 유리와 석영들이 부딪히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내며 모여든 커피보다 훨씬 더 늦는 뉴게이트의 배였다. 대략 6시간 후쯤에 도착할 것이라고 예상한 후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던 그 주변으로 경쾌하고도 말간 아이의 웃음소리가 흩어진다. 아마도ㅡ 자신 역시 마땅히 그러한 웃음들을 들을 수 있었던 과거의 편린 같은 것이 살짝 떠오르다가 안개처럼 흩어진다. 의미없는 가정이었다.
귀족들이 다니는 마을이라고 광고를 하듯 흙바닥이었던 길이 금방 잘 조각된 돌과 판판하게 깎인 보도블럭으로 바뀐다. 집집마다 흙먼지가 누렇게 낀 담이 사라지고 장미들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을 자랑하듯 서늘한 철창을 담으로 대신한 집들이 보기좋은 모양을 자아낸다.
미적 감각이 뛰어난 미장이들이 만들어놓은 조그마한 스노우볼과 같은 마을에서, 커피는 약간의 이질감도 느끼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 있었다. 타인에게 지독하게 무관심하며 오직 제 밥그릇과 보석 꾸러미에만 눈에 돌아간 귀족들은 새롭게 들어온 커피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냈으나 조금 특이하게 온 몸을 붕대로 가렸을 뿐 걷는 모양새도, 느릿하게 지팡이를 흔드는 모습에서도 품위가 떨어지지 않음을 확인하자 동족으로 의식하고는 질척한 시선을 떼어내 제 무료함을 달랠 신문기사를 찾았다.
"실례, 혹여 말씀 좀 물어도 되겠나?"
"물론이오, 무엇이 궁금하시오?"
"바람을 조종하는 괴이한 물건이 있다 하여 소문을 듣고 왔는데ㅡ 그것에 대해 정보를 조금 물어도 되겠는가?"
명령이 익숙한 말투였다. 덕분에 의아함을 품은 귀족은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영문을 모르고 흐르고 있는 식은땀을 조심스럽게 닦아내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고, 커피는 그럼 되었다는 듯 다시 옆 테이블에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귀족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약간의 의아함은 있었으나 온 몸을 가리운 하얗고 깨끗한 붕대 덕분인지 커피의 질문은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성격이 조금 이상한 괴짜 같은 귀족, 그리 여겨진 모양이었다.
"알고있소. 왕성의 창고에 있다지. 왕께서는 무엇이든 괴이한 것들을 죄다 불러모아서는 창고에 박아두는 습성이 있지 않소."
드디어 두번째 블럭으로 나아간 테이블에서 쓸만한 대답을 건진 커피의 입꼬리가 나른하게 올라갔을 때, 뉴게이트의 배는 다소 화려하게 섬에 정박했음을 알렸다. 해적이다! 요란하게 울리는 아랫마을의 목소리와 외침에 귀족들은 긴장감이 어린 표정으로 품속에서 프린트락을 꺼내들었고 혼란스러워진 분위기를 틈타, 커피의 걸음은 똑바르게 왕성으로 향하는 길 위에 올랐다. 이르게 도착한 뉴게이트의 배가 조금은,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란스러움이 아랫동네에서 귀족들의 마을까지 들이닥치는 순간, 커피는 바람이 부는 것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어느새 제 곁을 스치는 뉴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커피의 발끝이 왕성으로 향함을 알았을까, 뉴게이트의 발이 커피의 곁에 단호하게 멈춘 채 굳건하게 박힌다. 있는 힘껏 휘두르려는 듯 크게 어깨를 들어올린 채로 팔에 힘줄이 돋도록 언월도의 봉을 그러잡는다. 언월도가 단번에 바람을 가르며 왕성을 향해 참격을 그려내는 순간이었다.
탕—!
방아쇠가 당겨지는 소리다. 싸움을 곁에 두고 전쟁을 친구 삼은 포악하고 노련한 뱃사람 둘의 고개가 단번에 총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금빛과 은빛으로 얼룩덜룩한 프린트락이 끝이 날카롭게 가공된 납덩이를 쏘아낸다. 화약이 터지며 납총알이 뉴게이트의 허벅지를 향해 나아가는 순간 커피의 머리카락에서 피어난 수십쌍의 나비가 총알을 휘감으며 차르륵, 나비들이 옅은 잿가루로 산산조각이 난다.
흡사 보석이 깨지는 것처럼, 청량하고도 애처로운 소리가 총성 후에 찾아오는 이질적인 침묵 속에 퍼진다. 허무하게 사그라든 잿가루가 총알에 휘감기고 박혀들어 나아가는 것을 막아냈고 무거워진 총탄이 목표에 닿지 못하고 힘없이 떨구어진다. 공처럼 굴러 깨진 대리석의 바닥에 형편없는 모양새로 나뒹구는 총알을 한번, 그리고 짧아진 머리카락과 그 주변을 파르르, 맴돌며 날아다니는 적보라색의 나비들을 한번 내려다본 커피는 언월도의 끝이 멈추지 않고 방아쇠를 당긴 멍청한 귀족의 허리를 반으로 가르는 것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자신이 죽은줄도 모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던 그것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가고, 종내에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그대로 굳어 죽어버리는 것까지 대수롭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 커피는 호흡 조절을 잊어버린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뉴게이트의 허벅지를 남은 손으로 툭, 쓸어주었다.
"나 안 죽었네, 뉴게이트."
"하지만, 하지만.."
"그저 단지 머리가 조금 짧아졌을 뿐이네."
머리 자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비록 생으로 머리채를 잡혀 그대로 쥐어뜯기는 것과 같은 고통이었으나 고저없는 말투와 특유의 평온하고도 고즈넉한 분위기는 과연 그의 말에 신빙성을 더해주기는 했다. 말하는 커피의 걸음이 휘청거리지만 않았어도, 그 말은 퍽 믿음직스러웠을 터였다. 자세는 백조가 수면 위를 헤쳐나가듯 고저없이 규칙적이었으나 방향은 미세하게 다르다. 놀란 뉴게이트가 벼락같이 커피를 번쩍 들어올리자 격한 움직임에 놀란 듯, 짧아진 머리카락과 신체 일부가 파르르, 나비로 화해 반짝인다.
"커피, 너.. 상태가 괜찮은 게 맞는건가?"
"뉴게이트. 당장 보물을 가지고 복귀해도 3개월은 빠듯한 시간이네. 내 상태가 아니라, 보물의 행방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나."
점잖게 속도를 재촉하는 커피의 말에 번뜩 고개를 치켜든 뉴게이트가 다시금 언월도를 붙잡고 왕성으로 뛰어나갈 준비를 하려던 찰나, 묵직한 질문이 커피의 느린 걸음을 잡아챈다. 대답하기에 곤란한 질문은 아니었다.
"우리는 알고 있지 않나. 그깟 납탄, 맞아도 그리 아프지도 않았어. ...나를 왜 도와줬나?"
"그야 당연히. 그대를 친애하기 때문이네."
친애. 커피의 친애와 뉴게이트의 친애는 아마도 다른 의미였을테지만, 긍정의 의미임은 확실했다. 친애,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이곳저곳 각별하게 거리를 둔 녀석이 내미는 친애라니, 그 사실이 뉴게이트의 심장을 크게 뒤흔들었고, 하여 그는 적나라하게 얼굴 한가득 들이치는 다정하고도 따스한 미소로 표현했다. 실로 눈을 잡아끌만큼 매력적이고도 화사한 여름빛 같은 미소였다. 천진난만한 아이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마땅히 보이는 듯한 웃음. 자신의 친애가 이러한 방식으로 되돌아온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겠지.
뉴게이트가 손살같이 왕성을 향해 나아가는 사이, 커피는 언제나 그렇듯 나비를 일으켜 사방으로 흩어졌다. 적보라색의 나비가 옅은 자수정과 적색의 꽃가루와 같은 조각들을 흩날리며 파르르, 대학살의 풍경을 스친다.
뉴게이트가 몰고 온 록스의 해적들이 힘없는 시민들과 죄많은 귀족들을 향해 구분없이 공평한 죽음을 쏟아부었고, 조롱섞인 비아냥이 토막이 난 시체와 짓이겨지고 찢겨진 피웅덩이 위로 허무하게 내던져진다. 사람은 죽는다고 바로 시취가 나지 않는다. 그저 지금처럼 지독한 열기와 코를 찌르는 듯한 혈향에 저절로 미간을 좁힐 뿐, 나만 그것이 나비에게는 달콤한 향이었기에 커피의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지독할 정도로 단 향이 코끝을 아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콜록."
물론 그 사이 섞여들어있는 새로운 독극물을 마주할 때에는 더욱 두근거렸지만. 아무래도 마을의 약초꾼이 다같이 죽자고 냅다 독초 꾸러미에 불을 지른 모양이었다. 어떤 약초였을까, 박새일까, 마전자 나무일까? 그도 아니라면 낭만적으로 은방울꽃과 철쭉 같은 꽃일까. 과연 그의 죽음은 어떤 식으로 화하였는가? 약초꾼의 서러움이 악에 받친 듯 타오르는 초원을 타고 매캐한 향을 풍긴다.
가지고 있던 것들의 조합이 뭐였을까. 태우면서 독반응을 일으키는 약초들을 머릿속에서 하나둘씩 떠올리며 나비들은 다시금 사람의 몸뚱이로 변해 연기 속을 훑었다. 분명 푸르고 광활해 마을의 식량을 책임지고 시원스럽게 펼쳐져 미관을 담당했을 초원이었건만 지금은 가족을 눈앞에서 잃고 심장에 칼이 꿰뚫린 운 없는 약초꾼의 시체가 바위에 널려있음으로 미관을 해치고 있었다.
손에는 마지막 발악처럼 온갖 독초들이 죄다 엉켜 하얗게, 까맣게 제각각의 잿가루와 희뿌연 연기를 흩날리며. 그 속에서 홀로 고요하게 서있는 커피의 머리카락이 연기과 불어오는 해풍에 맞춰 흐트러진다. 파르르, 미처 해풍과 거세게 몰려온 물살에 밀려 잠시 방향을 잃고 머뭇거리던 나비 하나가 동족으로 착각함에 연기 속에 뛰어들고 커피의 눈앞에서 잿가루와 함께 추락해 나뒹군다.
아마 수십날을 고치 안에서 기다리고 갈고닦았을 아름답고 화려한 나비 날개의 문양은 형편없이 진흙탕에 얽혀 몇번 의미없는 날갯짓을 시도하다가 그대로 멎었고, 축 늘어진 나비를 무감각하게 내려다본 커피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반으로 갈라진 왕성이 굉음을 내며 부숴지고 산산히 조각나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부디 우리가 뒤져야할 왕성의 창고가 지하에 없기를.
"커피!"
"뉴게이트."
"거기서 나와라!!"
독과 잿가루로 휘날리는 연기 사이 서있던 커피의 눈썹이 쑥 밀려올라간다. 못마땅함이었다. 조금만 더 분석해보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텐데 왜 의미없이 재촉을 하는가. 덤덤하게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약초꾼의 손에 쥐여져있는 독초들을 갉작거리며 먹고 있는 나비들을 바라보았다. 대충 그가 분석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뉴게이트는 그대로 입을 다물고 연기 범위의 밖에 꼿꼿하게 선 채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었다. 불쾌해 죽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말이다.
신경쓰여서 원. 혀를 가볍게 차고 끈질긴 시선과 폴폴 풍기는 불편함을 감당해낸 커피가 마침내 분석을 끝냈다며 나비들을 회수한 순간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거세게 언월도를 휘둘러 연기를 모조리 날려버린 뉴게이트는 좁혀진 눈썹을 좀처럼 필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었다.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목적어가 없는 말이었다. 허나 못 알아들을 말도 아니었다. 하여 커피의 눈썹이 오늘로써 세번째로 올라가던 순간, 뉴게이트의 부가 설명이 덧붙여진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내는 말투였다. 흡사 어린아이가 투덜거리듯이 기어코 '독을 먹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뱉은 문장에 커피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붕대에 가려있는 표정을 용케 견문색으로 알아낸건지 아니면 감정을 읽어낸건지 모르겠으나 뉴게이트는 삐쭉 튀어나온 입을 좀처럼 집어넣지 않았고, 덕분에 완전히 박살이 난 왕성에 도달할 때까지, 커피는 뉴게이트가 내비친 감정의 편린을 해석해내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했다.
조각난 대리석들의 조각이 갑작스럽게 부서진 것을 억울하다 외치듯 날카롭게 솟아올라와 있었다. 덕분에 손수 날카로운 것들을 부숴주며 커피 가는 길을 곱게 깔아놓은 뉴게이트와 커피가 학살에 눈이 돌아간 부하들을 불러 왕성의 창고를 뒤지는 사이, 그의 눈동자가 놀랍다는 빛을 머금으며 한참 전 뉴게이트의 말에 되물었다.
"뉴게이트. 아까의 말은 내가 걱정이 된다는 뜻인가?"
"당연하다. 독을 마실 때마다 네가 얼마나 기침을 자주 하는지 아나? 몇번이나 식은땀을 뚝뚝 흘리면서 내 등뒤를 찾아드는지 아느냔 말이다. ...나는 네가 아픈 것이 싫다."
"그 이유는 무엇이지?"
이번에는 뉴게이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커피를 내려다보았다. 뒤에서 늘 침묵을 고수하며 분위기를 지켜내는 녀석이 이런 곳에는 눈치가 없다며 고개를 설핏 저어낸 뉴게이트의 입가에 이전과 다른 미소가 번진다. 엉뚱한 부분에서 무지한 자신의 친우가, 기특하면서도 동시에 우스워서, 무지에 솔직하게 알지 못한다 답하는 용기가 대견스럽웠다.
"그야, 내가 자네를 친애하기 때문이네."
자네가 식은땀을 흘리고 몸상태가 좋지 않을 때마다, 각혈을 하고 코피를 흘려 희고 깨끗하던 붕대가 붉게 물들어져 갈 때마다 마음이 아픈 이유도 전부 내가 자네를 친애하기 때문이지. 나는 자네의 평안을 바라네. 자네의 무사를 바라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전부 다 그대를 친애하기 때문이네.
절절하기도 한 그 고백에 커피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과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의 친애는, 무겁고도 진솔했다.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바라보아야 겨우 오는구나, 가는구나를 알 정도로 느린 속도를 자랑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해풍과 풍랑에 섣불리 휩쓸리지 않을 것이며 폭풍을 만나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선 더 단단해진 채 가라앉아있겠지. 분에 넘치는 친애다. 기껍게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분한 마음이었다.
"나는 자네가 마음에 들어, 그리고 그 이유는 자네가 '훌륭한 전사'이기 때문이네. 서있는 위치가 다르고 방향이 다르면 어떠한가. 결국 자네는 항상 싸우고 있는 전사이지 않은가?"
"...내가? 싸운다고?"
"스스로와 싸우고 있지. 그리고 그건 아주 힘든 일임을 알고있네."
스스로 발전하고자 나아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몹시도 아름답지 않은가. 윤슬에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아득하기도 하고. 뉴게이트의 말에 커피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처음이었다. 진실로 처음으로 듣는 평가였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하여, 오늘보다 조금 더 강해진 스스로를 위하여,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지극히 자신만을 위하는 방법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그 방식을 전사의 방식이라고 부르고 칭송해주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으니.
커피의 눈이 뉴게이트에게 똑바로 고정된다. 넓다란 등에 묶여 펄럭거리는 망토가, 그의 무거운 친애처럼 굳건하게 거친 바닷바람을 찢으며 버텨낸다. 그래, 이번에는 커피의 고개가 느릿하게 끄덕여졌다. 그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친애하는 이의 뒷모습은 그의 말처럼, 윤슬보다 더 아득하게 반짝거렸다.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아득했던 그날의 기억으로 보물의 부재에 대해서 호되게 소리를 지르며 거칠게 반응하는 선장의 반응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정도로 말이다. 해적단이 와해되고 갈곳을 잃은 사람들이 제각기 방랑을 택하고 줄을 선택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매달리는 와중에도 그가 먼저 생각이 날 정도로, 하여 결국 자신 역시 그의 무사를 바라게 될 정도로 말이다.
이따금, 길잃은 느낌에 고개를 들고 창백한 별빛을 바라볼 때에는 그와 함께 보았던 윤슬이 떠올랐다. 그럼 자신을 향했던 명예롭고도 훌륭한 전사라는 호칭과 아직도 무겁게 자신의 발목 아래에서 지탱해주고 있는 친애가 떠오르는 것이다. 하여 그것은 결국 연이라고 불러도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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