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
수리 X 유우성 드림

 


 
때로는 태양보다 더 빛나는 의지가 있다.
때로는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찬란하기 그지 없는 꿈이 있다.
 


 
 
밤을 살아가고 그늘 속에서 숨쉬는 자들이 그것을 발견했을 때에 대체적으로 갖는 감정은 두가지로 분류가 되곤 한다. 시기, 혹은 동경. 나의 경우에는 후자였다. 내 손에 쥐여진 칼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내가 빼앗은 목숨과 수없이 많은 생명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내가 밟아온 모든 발자국들이 붉었다.
 
 
 
 
그러니 저 눈부신 재능에 더러운 것이 묻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타고난 재능을 가감없이 발휘하는 자들의 행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들의 움직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단장이 귀에 못이 박히고 피딱지가 얹어 다시 떼어내질 정도로 말했을 때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두 눈으로 보니 느껴졌다.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게 펼쳐질 수 있는 것인지.
 
 
 

 
그건... 여명이었다.
 
 
 

 
탄탄하게 잘 짜여진 무대 위에 올라와 정해진 역할만을 수행하는 극. 어떻게 보자면 좁은 세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재능이 있었다.
 
 
 
 

그의 발이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조그마한 틀처럼 보였던 사각형 안에서 온 세상이 펼쳐졌다. 내딛는 걸음과 시원스러운 목소리, 떨림없이 내뱉어지는 대사들이 단순히 종이 위에 쓰여진 활자가 아님을 증명하듯 생생하게 살아 숨쉬었다. 호쾌하게 내뱉어지는 문장들에 실려있는 감정에 홀려 매료되었다. 그의 극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어졌다. 그가 펼쳐내는 수많은 이야기가 기대되었다. 그가 결국 올라가 펼칠 스크린 속의 풍경이, 그가 연기할 하나의 이야기가 몹시도 궁금해졌다.
 
 
 
 
 
 
 
 
"예? ...후원...이요? 그.. 사람한테?"
 
 
 
 
 
 
 
 
아주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냥 흔적처럼 남겨놓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냥 정말 숨만 붙여놓을 정도의 금액. 이따끔 그가 절실해질 때에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남겨놓은 금액이었다. 티끌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그가 찾을만큼 절박해지지 않기를 바랐다.
 
 
 
 
 
 
 
 
 
"아, <흑주> 후원자님? 그가 돈을 받아갔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소식을 들었으니까. 배신을 당했다고.





그래도 그는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맡겨두었던 금액을 찾아가서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듣지 않았다. 구태여 찾지 않았고, 소식이 흘러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내 쪽에서 외면을 택했다. 내가 보았던 순수하고도 찬란했던 그 세계로 기억하고 싶었다. 그렇게 끝을 맺고 싶었다.










운명은 늘 그렇듯
나를 외면했다.

 
 



 
 
 
 
 
 
 
"롱터우! 롱터우!!"
 
 
 
 
 
 
 
 
목청껏 외치는 이름에 환하게 웃는 얼굴이다. 내가 보았던 그 얼굴이었다. 연기를 위해 없던 진심을 만들어내는 그 미소였다. 찬란하고도 빛나는 거짓을 위한 미소였다. 결국 이쪽으로 왔구나. 종내에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겠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끝은 파멸일 것임을 알면서도 네 끝은 극처럼 찬란하게 끝나기를 바랐다. 눈이 아프도록, 시리도록 비추어지는 태양같은 조명에서 두 손을 들어올려 관람객들을 향해 기꺼운 인삿말을 내던지는 결말을 바랐다. 해피엔딩은 환영받는 서사가 되지 못함을 알면서도 네 극은 해피엔딩이기를 바랐다.
 




 
 
 
 
커튼콜이 내려가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면 보이는 새카만 화면 너머에서, 네가 웃기를 바랐다. 큐 사인이 끝나고 고생했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을 꿈꾸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번 꿈꾸어봤다.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은 상관없으리라고 여겼으니까.
 
 





 
 
 
나같은 사람이 빌어서 안되었던걸까. 이미 한가득 손에 피가 묻은 사람이 맞잡은 손이라서 기도가 잘 되지 않았던걸까. 사람을 너무 많이 죽인 사람의 목소리이기에 닿지 않았던걸까. 더럽혀진 기도였기에 빌어준 행복이 저주가 되었던걸까.
 
 






 
 

무참하게 끝이 난 사진을 보며, 거의 다 망가졌음에도 겨우 얻어온 CCTV의 메모리 카드를 보며, 그 안에서 맞이한 장대하고도 화려했던 네 서사의 마침표를 바라보며.









너의 오연했던 거짓이 결국은 여명이 아니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네 해는 없었다. 우리의 새날은 결국 얼룩진 채로 오지 않았다. 우리의 밤은, 끝나지 않았고 네 낮은 결국 오지 않았다. 너는 백열등에 눈멀어 달려든 벌레가 되었고 나는 네 비극을 두 눈으로 똑똑히 담으면서도 늘 그렇듯ㅡ 방관자만이 될 수 있었다.










내도록 죽인 살인의 대가가 이러할까.







탄생의 순간부터 죽어나가는 순간까지 결국 타인의 생을 먹어치워 삶을 이은 결과가 이러할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친애하는 자들의 자멸극을 두 눈을 뜬 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 어느쪽도 잃고 싶지 않아 그러했다.
눈물이 두려워 피눈물을 택했고 차악이 두려워 최악을 택한 최고의 머저리가 바로 나였다.









너만큼은 다른 결말을 맞이하길 바랐다.
너만큼은 다른 결과를 이어나가길 바랐다.








그것이 이토록 아픈 일인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그 찬연한 세계에 눈을 빼앗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네가 펼친 그 조그마한 틀에 온 세계를 넣지 말았어야 했는데.
펼쳐낸 손끝에 묻어나온 찰나를 친애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기어코 나는 너를 결국 친애하였구나.
이리 아프게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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