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_RI1
*캐슬 팬픽
*ver. 신태진
글을 써보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칼끝에서 죽어간 자들의 이름을 써보자, 다음에는 사연을, 그 다음에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 다음에는 내가 그들을 죽인 이유를. 내가 죽인 생명의 무게에 짓눌려 그날도 이루지 못한 긴 밤의 끝에서, 문득 그는 그러한 생각을 했다.
그리하면 비로소 그들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괴로운 이유를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수로써 삶을 살아가기로 택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노라고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은 자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대감 속에서 적어내려간 활자들은, 영 달랐다. 그가 가끔씩 지나가면서 보았던 활자들 안의 이야기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자신이 죽인 자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죽은 자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일까. 작가의 활자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숨쉬던 누군가의 이야기와 달리 그의 글은 고해성사처럼 담백하고,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활자 안에서, 마치 박제된 것처럼 지독할 정도로 숨막히는 고요를 자랑했다.
이대로 차라리 죽여달라고 부르짖는 듯한 자신의 글 안에서, 신태진은 잠시 입을 다문 채 자신이 끊어낸 삶에 묵념했다. 누구를 위한 애도일까, 남겨진 자들을 위한 애도일까, 아니면 떠난 이들을 위한 애도일까. 적어도 자신의 애도는 그들처럼 숭고한 뜻을 지니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문득 그의 가슴 속에서 서늘하게 들어찼다. 첫 글자를 적어내려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 그렇듯, 처음이라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꽤 깊은 뇌리에 남겨져버리지 않은가. 신태진은 기억을 더듬을 필요도 없이, 자신이 죽인 첫 사람의 이름을 적어내려갔다. 그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자신이 명령을 받고, 지시에 따라 망설임없이 끊어냈던 첫 숨을 힘주어 써내려갔다.
첫번째 페이지가 완성되었을 때에는 썩 괜찮았다. 두번째, 세번째, 점점 늘어나는 사연과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그의 노트에 천천히, 바닷물이 차오르듯 채워지기 시작했다. 까아만 잉크가, 조금씩 하얀 노트 위로 찰랑거린다. 그 넘치는 듯한 파도가 막힌 것은 그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을 죽였던 때로 돌아가야 했다. 더이상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의 사연이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이 죽인 사람의 이야기가, 흐릿하게 빗바래진 기억 사이로 흘려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마침내 비로소 세상이 무너지듯 절망했다.
아.
나는 이제 그들의 죽음을
이해할수도 없게 되었구나.
기회를 스스로 내던졌다는 죄악감이 자신의 목을 죄이는 순간 그는 불현듯 웃음을 터뜨렸다. 삭막한 방안,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서 그의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울려퍼진다. 만일 정말 귀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의 방안은 아마도 만석이었을테니. 문득 그런 허접한 상상을 하며, 신태진은 허파에 바람이 뚫리고 폐가 아프도록 공기를 채워넣고 다시 터뜨리듯 내뱉으며 웃었다. 겨우겨우, 숨을 쉬는 것보다 더 버겁게 터뜨린 웃음이 갑작스럽게 터진 것처럼 허무하게 사그라든다.
이게 무슨 꼴이지. 허탈하게 내뱉은 한숨이 미친 웃음소리의 끝을 흐리며 내뱉어질 때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엉망이 된 손을 시야에 담았다. 잉크가, 흘러내리고 엉망이 된 손이다. 정갈하게 적어 내려갔던 첫 페이지와 달리 이제는 절규에 가깝도록 흐트러진 글씨가 자신의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해 부끄러움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사람이란 이다지도 많은 감정이 찰나에 스쳐지나가는 생물인데, 그들의 마지막 순간에는 어떠한 감정을 품었을까. 그는 문득 그들이 누리지 못했을 또다른 감정들이 아쉬워져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손을 저주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사랑으로 살아가지 않는가?
타인이 찾아낸 정답을 움켜잡은 채 신태진은 오래되고 낡은 한숨을 내뱉었다. 입에 거미줄이 엉키고 바짝 마른 듯한 음성이 유리조각을 삼킨 것처럼 거칠게 입안을 맴돌았다. 그 날카로운 빗면과 파편에 입과 혀가 모조리 베여 피가 흘러내리는 감각이 이토록 선명하거늘 어째서 입을 열면 변함없는 혀와 고르게 자리 잡힌 치아가 자신의 시야에 담기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하여 그는 노트를 덮기 전 자신의 심정을 적어보기로 결정했다. 앞장에 즐비하게 쓰인 수많은 기록들은 단순한 보고서만의 의미도 못 되었기에, 그는 자신의 심정을 적어내려가기 위해 만년필을 들어올렸고, 고급스러운 무늬가 새겨진 금빛 펜촉을 노트에 내려놓는 순간 새카만 웅덩이가 만들어지도록 첫 음절조차 적지 못했다. 무얼 써야하는가?
도대체 이 살인귀의 심정이, 이 악마의 이야기가 누가 궁금하다고.
무엇을 써야한단 말인가. 이것이 의미가 있는가? 자신조차 확신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검은 잉크가 노트의 한 페이지를 모조리 새카맣게 채우도록 멍하니 펜끝을 맞대어놓은 채 미동조차 않았다.
비로소
그는 자신이 누구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무엇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악마라고 손가락질을 받기에 그가 품은 죄책감이 너무 컸고 살인귀라 가리켜지기에는 자신이 너무 비참하였으니 신태진, 그는 다시 한번 낡고 엉망이 되어 헌것처럼 버려진 제 이명을 주워 올려야했다. 청소부. 자신이 없애는 것은 그저 단순히 더러운 것을 치우는 일이라고 되내이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검게 물들어버린 노트의 페이지를 내려다보며, 신태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끝으로 집어 올린 노트를 망설임없이 쓰레기통에 집어던지며, 그는 마지막 위선으로 남은 십자가에 잠시 입을 맞추었다. 새벽이 밝아오기 전이었다. 어슴푸레한 푸른빛이 감도는 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으며, 그는 오늘도 자신의 일과를 위해 조각낸 달의 파편을 쥐었다.
붉은 과실을 따러 가야할 시간이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과실을 따러 가야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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