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MOMO
*커미션 글입니다.
*TYPE B
"로제프가 존이랑 싸운다는데."
심드렁하게 내뱉어진 문장에 한 사내가 고개를 들어올린다. 검은색 페도라 너머로 밝은 햇빛이 부드럽게 온몸을 덮은 흰 붕대 위로 어른거린다. 관심 있어? 딱히 기대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듯, 툭 떨어진 제안에 커피 역시 시선을 다시 책으로 옮기며 말없이 제게 말을 건 해적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넘긴다. 싸움은 흔했고, 유달리 재물에 대한 탐욕이 큰 존에게 도전하는 머저리들 역시 이 배에서는 수두룩했다. 그다지 큰 흥미를 끌지 않는 말이었고, 그 말을 내뱉은 해적 역시 커피의 반응을 기다리지는 않았다며 고급스러운 테이블 위로 턱 더러운 팔을 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인다.
"내기도 안하는건가? 벌써 링링은 존에게 올인했어."
답은 없다. 험상궂게 생긴 해적은 커피의 무반응을 익숙하게 넘기며, 턱을 괸다. 아침부터 벌어진 동료살해사건과 함께 저녁에 올라올 새로운 매치업까지 주르륵 읊어주던 해적이 입을 딱 다문 것은 뉴게이트의 그림자가 전망 좋은 갑판 위로 드리우고서였다. 큰 덩치와 함께 위압감이 느껴지는 무거운 분위기에 슬그머니 해적의 시선이 올라가며 뉴게이트의 얼굴에 닿는다.
"...뭐, 아무튼 그렇다고. 다음번에도 잘 이용 부탁해?"
당연하게 커피의 앞자리로 다가오는 그에게, 자리를 비켜줄 심산인지 냉큼 새하얀 테이블에서 팔을 치운 해적이 허겁지겁 의자에서 일어선다. 기다렸다는 듯 뉴게이트가 싸늘하게 해적을 내려다보고, 커피는 티팟 옆에 놓인 조그마한 돈주머니를 손끝으로 까닥인다. 정보값으로 놓인 소소한 금액을 탐욕스럽게 낚아채며 내일도 이용해달라 외친 해적이 히히덕거리며 동료살해 내기판에 뛰어드는 것을 멸시의 눈초리로 바라본 뉴게이트의 시선이 미끄러지며 커피에게 닿는다.
"내기할건가."
줄곧 답없던 커피의 고개가 드디어 움직임을 보인다. 짧은 그의 첫마디에 커피의 시선이 붕대 안에서 부드럽게 그에게로 닿는다. 평온하게 이어지던 침묵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다물린 입이 벌어지며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린다. 적당히 낮고, 부드럽지만 고와 얼핏 듣기에는 커다란 새가 우는 듯한 울음소리를 닮은 목소리였다.
"글쎄."
그게 커피의 오늘 하루 첫마디였다는 것을 알까. 그 귀한 목소리를 위하여 줄곧 아껴두고 있었음을 알까. 진한 자홍빛 눈동자에 오롯이 그가 담기는 순간 비로소 붕대 안에서 풀린 얼굴로 한껏 온화해질 수 있음을 그는 알까. 소소한 의문을 묻은 채 커피의 입가에 얼핏 미소가 지어진다.
뉴게이트는 커피의 한마디에 기가차다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린다. 둘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갑판의 난간으로 향한다. 곳곳에 피가 튀어있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아마도 피가 튀는 즉시 커피가 손끝으로 나비를 일으켜 깔끔하게 지워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전망이 가장 좋다는 이유 하나로, 커피는 그 자리를 사수하며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싸움을 금하곤했다.
그렇게 사수한 자리는 커피가 권력을 휘두르고 힘을 쓸만큼, 훌륭한 풍경을 선사해주었다. 짙은 고동색의 난간, 자세히 바라보면 은근 고풍스러운 디자인으로 깎인 난간의 구멍들 사이로 보이는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바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줄만큼 시린 하늘과 빙산을 닮아 보는 이의 마음에 이는 파문을 잠재울만큼 고요한 수면이 끝내주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좋은 분위기로군."
"그러니 내가 사수하는 것이지. 이곳에서 보는 풍경은 몹시도 아름답거든. 노을이 질 때에도, 여명이 올라올 때에도."
".....널 닮아 그러한가보군."
머뭇거리며 완성된 문장에 커피의 눈이 커졌다가, 천천히 휘어진다. 이 상식없는 배에서 뉴게이트는, 없는 말을 내뱉지 않는 사람이었다. 빤한 말이라고 하여도 그에게서 나온 말을 듣는 것은 느낌이 다른 이유였다. 자신을 닮았다는 말에 커피의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것을 견문색으로 느끼며, 뉴게이트 역시 수줍게 고개를 돌리며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고자 애쓰듯 입을 곧게 다문 채 우물거렸다. 살짝 달아오른 볼은 강한 빛 때문에 그러하지는 않으리라. 다량의 해수가 물살을 가르는 배에 저항하듯, 부드럽게 한번에 몰려오며 뱃전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다. 거의 살아온 생애의 절반을 바다에서 지낸 바닷사람들이 듣기에도, 기분 좋은 소리였다.
"글로리오사가 네게 고백했다던데."
파도가 두어번 쳤을까. 평화롭던 분위기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에 뉴게이트는 헛숨을 들이키며 급하게 기침을 쏟아냈다. 사레가 들려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기침을 내뱉는 그의 반응을 태연하게 무시하며, 커피는 활기찬 제 동료를 떠올렸다. 그녀는 꽤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는 편이었으며 상식없는 와중에도 눈은 높았던 해적들이 침만 꿀꺽 삼키며 눈을 돌리기에 급급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와중 자신의 낭군을 찾겠다며 이리저리 눈돌리고 쓸만해보이는 남자를 찾아 나서는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 역시 일상에 가깝다는 것도, 그 사실을 굳이 지적해주지 않은 채 커피의 시선이 파란 없는 수면 위에 고정된 채 뉴게이트의 반응을 기다린다. 하여 너는 긍정하였던가 부정하였던가. 그 대답에 자신은 어찌 반응할지, 그 반응을 이리 초조하게 기다리는 자신조차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커피는 자신의 얼굴을 모조리 가린 붕대에 잠시 감사함을 표했다. 약간의 시간을 들여 발휘해준 인내심에 대답한 것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랬지."
담담하기 짝이 없는 긍정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담백한 반응에 비로소 커피가 고개를 돌려 뉴게이트를 먼저 바라본다. 그 반응이 기뻐, 뉴게이트의 굳게 다물린 입가가 미묘하게 올라간다. 질투하는가? 그 짧은 질문이 입가에서 얼마나 맴돌았을까, 결국은 끝내 내뱉지 못한 채 쓰게 입안으로 삼킨 뉴게이트의 노오란 눈동자에 커피의 심기 불편한 시선이 닿는다.
마치 그게 끝이냐고 묻는 것처럼 빤히 고정된 시선에 뉴게이트의 유리를 닮은 눈동자가 능글맞게 휘어진다. 먼저 묻기 전까지는 답하지 않겠다는 듯 고집스럽게 다물린 입가에 결국 커피의 입에서 기어코 질문이 튀어나온다. 여러모로, 제게만 궂은 장난을 걸곤 하는 그가 밉지는 않았다.
"받아주었는가?"
"글쎄, 아직 고민중일세."
커피를 놀리듯 나온 대답에 커피의 미간이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늘 전전긍긍해하는 입장에서 여유를 갖고 놀리는 입장으로 바뀌니 제법 즐거운 듯, 뉴게이트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걸린다. 즐거워 죽겠다며 대놓고 숨기지도 않는 표정에 커피의 눈꼬리가 못마땅하게 올라간다. 사람 갖고 놀기는, 짧게 혀를 차며 악취미라 중얼거리는 커피의 반응에 뉴게이트가 어이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비죽, 입술을 내민다.
"자네가 하던 것과 다를바가 없다만."
"지금 그 말은 내가 그대를 갖고 놀았다는 뜻인가?"
"그럼 아니었나?"
"그대는 갖고 놀기에는 재미가 없어서, 굳이."
충격에 휩싸이는 얼굴을 보며, 커피는 필사적으로 올라가려는 입꼬리에 힘을 주어 내려야만했다. 이러니 놀리는 것을 그만둘수가 없지. 확실히, 뉴게이트와 커피는 유독 서로에게만 반응이 후하곤 했다. 지금도 보라, 어떤 비난을 듣고 어떤 비판과 무자비한 폭설을 들어도 심드렁하기만 하던 뉴게이트가 커피의 한마디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진 표정을 지었다가 툴툴거리며 투정도 부린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욕설을 퍼붓던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내던 듣고는 있나 싶을 정도로 무관심한 반응을 하는 커피는 현재 붕대 안에서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아내고 있다. 적어도 둘은,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품던 그것을 부정할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하는군."
"사과하지."
"됐어, 뭐 그런 거에 일일이 삐지겠나. 애도 아니고."
고개까지 홱 돌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애다만. 그 말은 꼭꼭 접어 입안으로 밀어넣으며, 커피는 다시 한번 눈까지 질끈 감으며 급하게 웃음을 참았다. 너무 삐지게 만들었나, 이제 달래주려고 입을 연다. 옅은 체리빛을 머금어 탐스러운 입술이 벌어지고 노련한 목소리가 나오려는 순간.
찌르르ㅡ
눈이 뜨인다. 기분 좋게 후덥지근했던 공기와 그것을 식혀주듯 서늘하게 불어왔던 바람이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진다. 등뒤에서 들리던 요란한 동료들의 웃음소리와 술잔을 부딪히며 경쾌하게 퍼지던 농담들이 흩어진다. 어디로 눈돌리기만 하면 새파랗던 풍경과 보석보다 더 찬연한 빛을 머금고 있었던 푸르름도 역시 없다. 고개를 돌리면 늘 그렇듯 테이블에 앉아 나직한 미소를 짓고 있는 네가 없다. 찻잔을 들어올리고 해적답지 않게 고상한 취미를 섭렵하고 있던 네가 없다. 널 닮아 창백하지만 언뜻 청량한 색채를 머금은 다기잔을 들어올리고 있는 네가 없다.
하늘에 찬란하던 푸르름은 어느새 어둑해진 밤으로 뒤덮여있었고, 소란스럽던 주변은 어느새 풀벌레 소리와 풀밭을 스치는 바람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린다.
좋은 꿈을 꾸었다. 간만에 네가 나오는 꿈이었다.
배에서 내렸던 때도 아니고, 포악하던 선장이 죽은 그날의 꿈도 아닌 네 꿈을 꾸었다. 실로 지옥도와 닮았던 그날의 전쟁도 아닌 네 꿈을. 실로 간만에 맞이한 평온하기 짝이 없던 꿈이었음에도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는 이유는 분명 그 꿈이 행복하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방법 중 하나로는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도록 하는 방법이라더니. 뉴게이트는 헛웃음을 지으며 떴던 눈을 돌려 창가에 비추어지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꿈결의 자락이 아직 남은 듯, 등뒤로 아직도 네가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차라도 한잔할텐가, 실없는 소리로 나는 입에도 대지 못할 독차를 권유하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던 네 목소리가 아직도 울리는 것 같았다.
그리움은 늦다. 후회만큼이나 늦었다. 우리가 조금 더 솔직했다면 달랐을까. 대놓고 함께하자 손을 내밀고 가자 말하였다면 달랐을까. 그럼에도 끝내 바라보고 있던 방향이 달라 헤어졌을까. 뉴게이트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어젖혔다. 내 숨은 네 호흡보다 더 가치있었을까. 대체 왜 너는 나를 두고 그리 수월하게도 떠났다.
쏴아아.
이 손길마저도 너를 닮았다. 바닷바람을 품어 짠 향을 머금고 나보다 더한 수라를 거쳐온 주제에 홀로 고고하게 핀 꽃처럼 슬쩍 내민 손길을 닮았다. 홍차의 향과 자주 마시던 독차의 코끝 아릴 정도로 단 향이 뒤섞인 그 향이 지독할 정도고 그립게 가슴을 후벼판다. 시린 은빛을 머금고 반들거리는 저 꽃이 너를 닮았다. 보라색과 붉은색 사이 그 위험한 색을 닮아 섣불리 다가가지도 못하는 주제에 시선도 떼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너를 닮았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이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웃음짓는 너를 닮았다.
뉴게이트는 천천히, 창가의 책상에 앉는다. 그 위에 올려진 티팟에 담겨있던 차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미리 만들어둔 것인지 아니면 의욕을 잃어버린 자신을 위하여 살려낸 자식들이 두고 간 배려인 것인지. 식은 티팟에서 홍차의 향이 흙냄새에 얽혀 흩어지는 것을 느끼며, 허무하게 웃는다. 결국은 모든 것은 전부 다 흩어지고, 흐릿해지며 색을 잃기 마련이었다. 한때에는 싱그럽게 녹음을 머금고 있던 갈대가 시간이 지나면 옅은 금빛으로 물들어지듯이. 영원한 것은 없다. 그 사실을 뼈져리게 알고 있음에도 어째서 또다시 헛된 희망을 품었던가, 너는 틀리지 않고, 너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기억만큼은 이토록 추억이 되지 못하고 생생하게 살아숨쉬는가. 아직도 눈을 뜨면 이 바다 너머에 네가 있을 것 같고, 해군에서는 지긋지긋하게 네 행적을 샅샅이 파헤쳐 신문 한 구석에 반드시 끼워넣었을 것 같다. 여느날처럼 네 소식을 신문에서 읽고 그런 사고를 치기 전에는 먼저 얘기해달라며 픽 웃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게 답장을 기대하지 않은 편지를 보낼 것 같고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진부한 인삿말이 적힌 전화를 나직하게 몇번이고 중얼거리고 실없이 웃었을 것 같은데.
하필이면 네가 이 세상을 떠난 날이 겨울이었기 때문일까. 봄이 오지 않았다. 언 땅이 녹고 새순이 돋아 이제는 녹음을 머금어야 하는 땅이 아직도 겨울처럼 창백하기만 한 땅이다. 눈앞에 즐비하게 놓은 녹음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다. 뉴게이트는 고개를 돌려 창틀 너머로 붉고 푸른 빛을 섞어 머금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날과 똑같은 풍경이었다. 네가 죽었던 그날, 나는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몇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전화가 울릴 것 같았으니까. 전화를 들어올리면, 그럼 우리는 다시 과거를 얘기하고, 미래를 가늠했다가 결국 푸스스하게 웃어버리고 끝나는 그런 실없는 이야기를 하겠지. 뉴게이트의 손끝이 천천히 떨린다.
쨍그랑. 데구르륵...
창가에 놓인 꽃병이 깨진다. 안에 담겨있던 자홍빛의 꽃이 짓이겨지고 썩어 말라있다. 군데군데 깨져 뭉텅이가 진 고급스러러운 다기가 언뜻 자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몹시도 단단해보이고 깨끗하지만 막상 손을 대면 너무나도 쉽게 깨질 수 있는 한없이 연약하기만 한 것. 금이 가는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추락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진실이란 이토록 가혹하다. 유독 이 세계는 그에게 환히 긍정했던 적이 없었기에, 가혹하게 들이밀었던 운명들이 수월하게 넘어가주었기 때문일까, 이번 한번만큼은 미친 척 달려들었다면, 그러했다면 너는 살았을까.
네가 없는 세계에서
내가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앞으로 다가올 모든 계절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봄이 오면 자주빛으로 피어날 꽃을 보며 널 떠올릴 테고, 여름이 되어 소낙비가 내린다면 풍랑을 함께 헤치며 나아갔더너 네가 떠오를테고, 가을이 되어 단풍이 지면 붉고 탐스럽던 단풍보다 더 붉고 검은 피를 흘리며 마지막 숨을 쉬었던 네가 떠오를테니까. 영원히 겨울일 터였다. 분명 그러해야할 터인데. 손끝이 아릴 정도로 시리고 추워 눈물이 쉼없이 흐르는 것이 옳아야하는데.
너는.
살아있었던 너는.
살아있었을지도 모르는 너는.
분명 내 꼴을 보며 뭐가 그렇게 문제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선 손을 펼쳤겠지. 네 품안에 기어가듯 그렇게 머리를 박으면, 그때에는 고양이를 쓰다듬듯 나른한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선 너답지 않다는 단조로운 감상평만 남겼을 터였다.
"....에스프레소."
그러니 그리움은 여기서 끝내는 게 맞다. 너라면 분명 내가 없는 세계에서도 잘 살아냈을터니까. 네 곁에 서기 위해서는 최소한 모습이라도 같아야하지 않겠나. 너는 울지 않는 사람이다. 너는 내가 없는 세계에서도 담담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내 생을 채워나갈 사람이니 버겁더라도 나 역시 생을 살아가야겠지. 뉴게이트의 눈가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해가 지는 줄 알았는데, 새로운 날이 되고 있었다. 은빛이 사라지고 금빛으로만 찬란하게 펼쳐지는 스핑크스 섬에 아침이 오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부정해도 결국 시간은 흐른다. 언 땅은 아무리 애를 써봐도 결국 녹을 터였고, 아무것도 심지 않은 땅에서 억척같이 잡초가 피고 그 위로 벌레가 꼬여 기어코 꽃이 고개를 치켜들 터였다. 그게 자연이니까, 그게 순리이며 운명이었으니까. 하여 뉴게이트는 고개를 치켜들고 동터오는 순간을 바라보았다. 밤은 지났다. 이제 단 꿈에서 깨어나야할 시간이었다.
비로소 네가 없는 봄이 왔다.
네가 없는 첫 봄이었다.
겨울보다 더 서럽게 다가올 봄이었다. 그러한 봄을 몇번이고 맞이하며, 이번에는 어떤 계절을 사랑하게 될지, 어떤 계절에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지. 기어코 나는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할지. 뉴게이트는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세상으로 나아가야할 시간이었다. 네 곁에 서기 위해 다시 한번 더 살아가야할 순간이었다. 네가 대신 이어놓은 내 호흡이 벅차오르도록 낭비조차 허용하지 못할 순간이었다. 찬연한 봄이었다.
'𝐎𝐍𝐄 𝐏𝐈𝐄𝐂𝐄 > 𝐶𝑜𝑚𝑚𝑖𝑠𝑠𝑖𝑜𝑛'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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