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umgore
 
*이 글은 커미션 글입니다.


 
그러고보니 너 방에 카드가 있던데.
 
 
뜬금없는 말이 식당 한가운데에서 아련하게 퍼진다. 이제 막 갓 구워져 새빨갛고 탐스러운 체리의 알을 자랑하고 있는 체리파이를 먹고자 한입 크게 벌렸던 티치는 조심스럽게 한껏 벌렸던 턱을 떼어내 닫고 얼떨떨해하는 낯으로 긍정했다. 으응? 카드? 있지. 모비딕에 없는 게 있다면 티치 방부터 가보라는 모비딕의 불문율처럼 그의 방에는 정말 온갖 것들이 다 있곤 했으니까.
 
 

그럭저럭 시간을 때우기에 적절하기 그지없는 보드게임, 카드게임과 온갖 흥미로운 잡설들을 엮어놓은 잡지 하나까지 전부 그의 방 안에는 쓸만한 것들로 가득 차있었기에 혹자는 그 방을 모비딕의 보물창고라고 부르기도 했으니까.

 
 

여튼 그의 방 안에 카드가 있음을 확인한 삿치의 표정이 화악 밝아진다. 시간도 보낼 겸 카드게임이라도 하려나, 간단한 마술트릭까지도 어렵지 않게 소소한 재미로 익혀두었던 티치에게 그가 제안한 것은 꽤나 예상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었다.

 
 
 

"그럼, 우리 겜블할래?"

 
 
 

생각이 다른 쪽으로 튀었는데.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겜블이란 단어를 머릿속에서 굴린 티치는 이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그 속에서 찾아낼 재미와 흥미에 반색한다. 해적치고 재밌는 것을 마다하는 머저리는 없으니까! 이 바다에서 뛰놀고 기나긴 항해와 지루한 똑같은 풍경 속에서 그들은 사소한 오락거리라도 그저 가뭄의 단비마냥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었다.

 
 
 

"나쁘지 않지, 제하하하하. 근데 여기서 하게?"

 
 
 

식당 한복판에서? 그 말에 삿치는 그제서야 자신들이 있는 장소가 마르코까지 있는 식당 한복판임을 알아차리고 아차, 하는 표정으로 급히 한 사람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매서운 금안이 <겜블>이라는 비교적 일반인에게는 불순한 단어에 홉뜨여졌으나 그들이 해적임을 감안하듯 느릿하게 눈동자를 돌려 묵인할 것임을 보였다.

 
 

암묵적인 승낙에 벌떼같이 환호하며 자리에서 일어선 해적들이 일시에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추고 기다렸다는 듯 이리저리 거리를 두고 있던 테이블을 끌고 잡아당겨 순식간에 카지노에서나 볼법한 약간은 허접한, 겜블 테이블이 완성된다.

 
 

이럴 때에만 손이 빠르다니까, 익살맞은 티치의 말에 아무렴 겜블인데 돈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형제들의 주머니는 어느새 두둑히 금화와 은화로 가득 짤랑거린다. 아직 종목조차도 정하지 않았다 지적하는 티치의 발언에는 옳다쿠나 그마저도 투표와 도박을 내거는 그들을 향해 결국 크게 웃음을 터뜨린 티치는 손가락을 튕겨 무엇이든 자신이 이길 것이라 여느 해적처럼 호언장담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무슨 자신감이래? 티치 너 운은 그럭저럭 평범한 편이지 않나? 오히려 삿치가 운이 꽤 좋은 편이지!"

 

"맞아, 행운하면 우리 4번대 대장 나으리님!! 아니면 뭐 규칙집을 통째로 외워버린 마르코라던가?"

 

"대신 난 손이 빠르잖아. 제하하하하!!"

 

""그건 그렇지!!""

 
 
 

티치의 말에 동시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진심으로 동의한 형제들이었다.

 

도박에는 긴박감이 넘치는 음악이 필요하다며 레코드판, LP와 턴테이블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들을 멈춰세우고 현장감이 넘치려면 직접 연주하는 게 좋다며 악기를 집어들고 되돌아오는 해적들이었다. 그 모든 소란스러움에 키득거리며 웃음을 흘리는 티치였다.

 
 
 

"그럼 투표 깐다? 룰렛 13표, 블랙잭 57표, 포커 48표, 바카라 1표!

 

이거 뭐야!? 룰도 모르는 놈들이 태반인데 지 안다고 집어넣은 놈은? 순정 홀짝 56표! 이야, 아슬아슬했다? 참여인원은 투표한 놈들로 생각해도 되겠지? 그럼 총 인원 175명의 겜블! 시이이자아악~하겠습니다!"

 
 
 

중간에 자기만 아는 것을 고집한다며 지적하는 하루타의 말에 고개를 슬쩍 돌린 게 아마 절대 마르코는 아닐 거라고 그들은 믿어주기로 했다. 아무렴 겜블을 하는 놈들은 손발이 다 잘려 바다에 빠져봐야 관둘거라고 악담을 퍼붓던 마르코가 정말 겜블에 참여한다고? 그건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지. 수근거리며 해적들의 욕설과 험담에 도리어 고개를 치켜들고 당당하게 블랙잭에 참여를 외치는 마르코였다.

 
 

얼떨떨해하는 해적들에게는 불만 있냐며 태연하게 구는 것으로 간단히 패배를 떠안긴 그가 마침내 어느 프로그램의 MC처럼, 하루타의 우렁찬 시작 선언을 들으며 첫번째 겜블, 블랙잭을 시작했다.

 
 

룰도 모른다며 부루퉁하게 나온 입술로 슬쩍 뒤로 물러서는 해적들 사이 마르코는 고개를 쑥 들이밀고 의자를 끌어와 털썩 자리를 차지했다.

 
 
 

"어, 마르코도 참여할거야?"

 

"왜, 느도 즐기는데 왜 나라고 못 즐기겠어요이?"

 
 
 

아까의 소란스러움과 험담을 들었는지 잔뜩 뿔이 난 마르코의 뾰족한 발언에 다시 한번 웃음이 휩쓸기를 한 차례, 딜러로 선정된 것은 저번보다 손기술이 더욱 현란해졌노라 자랑하는 삿치였다. 하나의 판에 붙은 것은 다섯. 조즈, 마르코, 티치, 아트모스와 하루타까지 대장급들이 참여한 게임에 소속부대의 해적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대장을 응원했다. 다 죽여버리고 완벽한 숫자, 21을 맞추라며 묘한 압박과 함께 부러 배경음악보다 더 크게 금화와 은화를 부딪혀댄다.

 
 
 

배경음악은 자연스럽게 긴박하고도 웅장한 음율로 선정되고 눈치껏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북과 피아노가 가지런히 그 위로 하모니를 쌓는다. 한장의 카드에 한달치 취미와 요양이 결정되리라! 풍요롭게 남들의 피와 살을 뜯어먹으며 살 것이냐 아니면 땅거지마냥 형제들의 자비를 구걸할 것이냐!

 

일생일대의 결정이라도 하듯 삿치의 손이 부드러이 카드를 뒤섞고 차가운 다섯쌍의 눈이 모조리 그의 손가락 솜털하나하나를 뜯어볼 기세로 고정된다.

 
 
 

"우와, 여기서 손 잘못 놀리면 나 어떻게 되는거야?"

 
 
 

눈깔들에서 불이 나와. 정말 말 그대로 불이 나올 것 같다 투덜거리는 삿치의 발언에 게임 참여자 넷은 눈을 둥그러니 뜬 채 삿치와 서로를 바라보고 씨익 광대를 올려웃어보였다. 몇몇은 손사래까지 치며 그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나긋한 어조였다.

 
 
 

"별거 없어, 제하하하. 아마 식당에서 나오지 못하게 되는 정도?"

 

"그렇제, 티치 말대로 그리 겁먹지 않아도 괜찮어. 4번대가 한달은 모조리 삭막하게 지내도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지요이."

 

"음. 맞는 표현이다. 별거 없지. 그저 잠깐 걷지 못하게 될 뿐이야."

 

"맞아, 손은 남겨둬야지! 요리해야하는데. 우리 참 상냥하네, 그렇지?"

 

"음! 다 섞었다!!"

 
 
 

황천길보다 더 끔찍한 지옥불 길을 친히 손가락 걸어 약속해줄 듯한 잔혹무도한 형제들의 압박에 삿치는 식은땀과 함께 슬그머니 빼먹으려고 했던 7클로버를 곱게 카드에 넣고 정직하게 섞었다. 내 발목은 소중하니까, 만약 정말 모른 척 손기술을 쓰려고 했다면 저 견문색에 통달한 초인들이 곧장 요새 들어서 휠체어에 타고 싶어 환장을 했냐며 나긋한 어조로 정말 발목을 꺾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닌 척 겜블만큼은 진심인 티치도 이번만큼은 말리지 않을테고 슬그머니 괜찮은 휠체어나 부탁하러 아트모스를 부르겠지. 피눈물보다는 나을 눈물을 머금고 마침내 카드가 한장씩 공평하게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온다. 제각기 숫자를 확인하고 도르륵 서로를 향해 굴러가는 눈동자.

 
 

포커페이스를 지키고 싶은지 줄곧 나른한 얼굴로 웃는 마르코와 아무렇지 않게 오늘도 맛있다며 미처 먹지 못한 체리파이의 따끈한 온기를 혀안에서 굴리며 즐기는 티치, 늘상 무표정한 조즈와 포커페이스라면 다 이놈이 가르쳤을 것이 뻔한 하루타까지 쉽지 않은 대결이었다. 표정으로는 넷 다 아주 좋은 패가 들어온 듯이 굴었으니까.

 
 

패를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승자도박 참여자들만이 빙글빙글 그들 주변을 돌며 누가 승리자일지 반들거리는 금화를 치켜세우고 상자에 튕겨 골인시킨다.

 
 

부지런히 상자를 들고 돌아다니며 누가 승리자가 될지 홍보하며 여러 미사어구를 붙이는 비스타와 우아하게 마르코의 상자에 올인하는 이조우의 행동에 다시 한번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음악과 함께 귓가를 스치고 소란스러움 가운데 마침내 두번째 카드가 차례로 그들에게 쥐여진다.

 
 
 

"..윽."

 

"꽝이로군. 21 초과야. 버스트."

 
 
 

툴툴거리는 조즈와 나직하게 신음을 내뱉는 마르코, 그리고 그야말로 가장 완벽하다는 듯 황홀하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삿치가 씩 입꼬리를 올리며 이죽거린다. 이런 다들 끝인건가? 그 말에 티치가 팔랑거리는 두 개의 카드를 까닥인다. 아직 안 끝났어, 삿치. 그의 행동처럼 아트모스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세번째 카드를 부른다.

 
 

-촤르르. 탁. 탁. 스륵...

 
 

카드가 다시 한번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섞이고 이제 슬슬 승리자가 결정될 판이라는 것을 눈치챈 연주자들의 현이 빠르게 움직인다. 격양된 분위기 속에서 한껏 집중력을 끌어올린 세쌍의 눈이 카드집에 모였다가 흩어지고 마침내 세번째 카드를 받은 순간 티치의 우렁찬 선언이 판을 뒤집는다.

 
 
 

"블랙잭BlackJack!!"

 
 
 

의기양양하게 카드 세장의 조르륵 그의 손가락에 따라 테이블 위로 흩어지고 선명히 합쳐지는 숫자의 셈이 21에 달하는 순간 삿치와 아트모스의 한숨소리가 티치의 승임을 인정한다. 손기술이 좋아서 운도 훔쳐갔다고 투덜거리는 삿치가 남은 카드를 정리하고 걸려있던 금화와 은화를 모조리 독차지하게 된 티치가 경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가죽 주머니가 찢어질 정도로 가득 담긴 돈자루 속 가장 반들한 금화를 꺼내 삿치에게 건넨다.

 
 
 

"행운의 체리파이 덕분이지. 이 승리의 영광을 체리파이의 창시자, 삿치에게!"

 

"이야아~, 이런 식으로 판에서 발 빼려고 한다 이거지? 절대 안돼!!"

 
 
 

따고 도망치는 건 용납못하지. 고양이처럼 눈꼬리를 한껏 올리고 생글거린 삿치가 슬그머니 금화를 잡아채곤 테이블을 세차게 두드린다. 어딜가려고! 먹은 거 죄다 뱉어낼 때까지는 이 테이블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마! 티치는 낭패감에 물든 얼굴로 흉흉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마르코, 조즈와 아트모스를 향해 슬쩍 어설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제하하.. 좆됐네..."

 

"땄는디 그냥 넘어갈 속편한 생각을 한 건 아니지요이?"

 
 
 

슬그머니 어마어마한 악력을 자랑하며 의자와 합체시킬 기세로 어깨를 내리누르는 마르코였다. 애초에 도박이 돈 따려고 남의 돈과 내 돈 걸고 승부하는 것 아니던가. 티치의 정당한 항의는 마르코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퇴로를 막아세우며 바짝 거리를 좁히는 아트모스, 조즈가 가세한다.

 
 
 

"에이 설마, 티치가 그런 호락호락한 인물로 우리를 봤을리가 없어."

 

"으음 맞지맞지. 딴 거 죄다 뱉어낼 때까지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마."

 
 
 

삿치에게로 향했던 경고가 날이 세워진 채 제게 다가와도 티치는 그저 페와 가슴께를 간지럽히는 미약한 즐거움에 기껍게 키득거릴 뿐이었다. 모비딕 위에서만 사용되는 금화와 닳아빠진 악기를 윤이 나도록 연주하고 관리하는 지금 이 순간 식당이 바로 그들의 카지노였으니까.

 
 
 

"자! 마저 다음판으로 후딱 넘어가자고! 다음은 홀짝이었지!? 주사위 가져와!"

 
 
 

제각기 티치에게 걸기를 잘했다 마르코는 왜 이리 운이 없냐 삿치가 이번에 손기술을 써줬으면 좋겠다 요란스럽게 말을 얹던 해적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방에서 온갖 주사위와 컵을 가져오고 매끄러운 천 위로 주사위 두개씩 각각 두개의 컵으로 들어간다.

 
 

도르륵 굴러가는 컵속의 주사위에 번쩍 손을 들고 홀, 짝! 을 외치는 그 소음에 티치 또한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온 얼굴에 경련이 다 일어나도록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소음을 싫어하는 그조차도 반갑게 받아들일만큼 화려하고도 유쾌한 형제들의 웃음이었다. 수면과 파도를 가르고 나아가는 고래의 등 위에서 부드럽고도 매끄러이 울리는 악사들의 음악소리, 짤랑거리며 금화와 은화가 부딪히는 소리 어음이라도 써야겠다며 종이를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펜대가 잉크를 묻혀 스치는 소리가 울리지만 무엇보다 가장 찬란하게 기억될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즐기는 형제들의 웃음소리였으니. 티치 또한 그저 조금 빛나는 돌에 불과한 금화를 유쾌하게 집어던지고 손가락으로 튕겨 올리며 그들의 흥에 온 몸을 던져 즐기기로 했다.

 
 

보잘 것 없고 특별할 것 없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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