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MOMO
*해당 글은 커미션 글입니다.
서로가 최선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의 사랑은 무엇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해서 상디는 언제나 씁쓸하게 입가에 익숙한 미소를 띄워올리고 그런 종류의 사랑 또한 있는 거 아니겠냐며 너스레로 넘어가버리곤 했다. 자칭 희대의 로맨티스트이며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고 습관적으로 말하고 다니는 그 역시도 진정으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꽤 당황스러워하는 얼굴로 우물쭈물거리며 쉬이 답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가 쉬이 답하지 못한 이유는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실로 그러한 종류의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첫만남을 떠올리라고 한다면ㅡ
아마 그는 어느 초여름날 슬슬 뜨거워져가는 날씨에 불만스럽게 땀이 난다고 중얼거리며 가게 문을 나섰을 때를 꼽을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날은 제프가 감기에 걸린 날이라서 유독 신경이 날카로웠던 날이었다.
"젠장, 뭐 그런 독한 감기가 다 있고 그래? 몸도 못 일으킬 정도로 지독한 열이라니, 그러게 진작 건강검진도 꼬박꼬박 받으러 가라니까는."
걱정 섞인 말을 내뱉으며 익숙하게 가게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들어올린 셔터 아래로 보였던 어쩌면 익숙하다고 평할지도 모르는 그러한 신발의 모습. 상디는 의아함을 품으며 고개를 들어올렸고 그곳엔 자신과 비슷한 색을 품은 새카만 눈동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와아아악?!?!!"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기겁하며 서로 뒤로 물러섰을 때 상디는 보기좋게 세워두었던 메뉴판을, 낯설지만 익숙한 남자는 허리에 묶어두었던 목도를 부러뜨리며 허겁지겁 자신의 놀란 마음부터 쓸어내리기에 바빴다.
"으악! 내 메뉴판!! 이거 쓰느라 내가 몇시간을 날렸는데!?"
"내 목검! 제기랄, 너 내가 이걸 얼마나 신경써서 관리했는지 알아!?"
"알게뭐냐! 그딴 거!"
"뭐!? 나도 그딴 거 알바 아니거든!? 니 메뉴판이 부서지든 말든 내 상관 아니라고!"
"네놈 때문에 놀라서 부러뜨린 거잖아!"
"나도 니놈 때문에 놀라서 부러뜨린거야!!"
물론 그 직후 각자가 해놓은 짓거리에 불현듯 정신이 든 것처럼 날카롭게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시작했지만. 생각해보면 그게 아마 그들의 첫 번째 만남이라고 칭해도 될 정도로, 강렬한 만남이었다.
신명나게 서로 기척을 확인하지도 않고 냅다 셔터를 올린 네 잘못이다, 누가 셔터 올리는데 그곳에 서있으라고 협박했냐 등 까내기에 바빴던 그들은 그저 이 만남을 최악이라고 회고하곤 했다.
하필이면 그날 왜 그런 놈을 만나서는, 서로에게 되새긴 욕설과 비슷한 비난을 비웃듯, 운명을 그들을 떨어뜨려놓을 수 없다는 듯 기가막히게 이리저리 만나게 만들어놓곤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다음엔 함께 다니는 친구들의 소개로. 졸지에는 처음으로 꿈을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할만큼 진심으로 따르고 싶었던 남자의 소개에까지 도달했을 때, 마침내 그들은 체념이라는 것을 학습하기로 했다.
유치찬란하기 그지없는 기싸움에도 그저 그들을 만나게 하고 덥썩 앉혀놓은 장본인, 루피는 웃음을 터뜨리며 너희는 참 재미있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천진난만하게 호칭에 대한 것을 칭찬하곤 했다. 그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이를 악물고 으응, 이라며 떨떠름하게 답해야했는지는 그들 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동경하는 대상이 겹쳐서 가지고 있는 질투, 비슷한 감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라면, 자신이 그런 형편없고 싸가지 없는, 일명ㅡ서로에게 동일하게 가지는 감정이었지만 알게뭐람, 상디와 조로는 이미 서로에게 내뱉는 무례한 언행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합의한 상태였다. 이미 가차없이 까내렸던 첫 인상에서 그 이상 떨어질 이미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설령 존재했더라도, 그들은 굳이 이미지를 잡으면서까지 서로에게 정성을 들이고 싶어하지는 않았다ㅡ예의없는 그놈에게 미약하게나마 두근거린 심장이 설명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건 분노로 인한 것이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애정과 친애와 관련되지 않은 마음이어야했다. 스스로도 아마 어렴풋이 알고 있었겠지만. 상디는 으레 처음 사랑에 빠진 상대들이 그렇듯, 자신의 마음을 필사적으로 외면해놓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가진 것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디, 그 뿐만이 아니었지만.
"제기랄. 내가 왜..!! 그딴 놈을 신경쓰고 있어서는..!!"
수련에 방해가 될 정도로 어렴풋 떠오르는 금발머리의 잔상에 조로는 다시 한번 힘차게, 힘이 과하게 들어간 어깨근육을 움직이며 불필요한 동작이 뚝뚝 묻어져나오는 어설픈 검을 휘둘렀다. 겨우 떠올리는 것 하나만으로 이렇게나 정신력이 흐트러져서는, 조로의 얼굴이 찡그려지고 곧 이성은 교육받은대로 차갑게 금발머리를 싫어할만한 이유를 주르륵 나열하기 시작했다.
첫만남부터 무례하게 외모에 대해서 지적했다. 음, 이건 안타깝게도 본인도 했던 짓이라 아무래도 싫어할만한 이유보다는 그가 자신을 싫어할 이유가 될 것 같았다. 기각이로군.
목검을 부러뜨렸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괜히 자신이 놀라서 스스로 넘어지다가 부러뜨린 것이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가 부러뜨린 건 아니었다. 또한 상디 역시 자신의 메뉴판을 부숴먹었으니 오히려 그걸로 따지기에는 다시금 쌍방이 되어버리곤 했다. 원점이었다.
그렇다면, 시시때때로 시야에 들어오는건? 이것 역시 기각이다.
네 생각이 나서 수련을 못하겠으니 다른 곳으로 꺼져달라고 말하기엔, 조로는 안타깝게도 상디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심상수련을 하고 몇번이나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명상에서는 슬프게도 한쪽 눈을 가린 찰랑거리는 금발과 여성에게 무척이나 신사적으로 대접하면서 제게는 미소 한줌 보여주지 않는 괘씸한 요리사가 한명 가득 채워질 뿐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은근한 마음을 드러내곤 또 밀어내는 것을 반복, 그들은 마침내 옅고 닳은 술기운과 달빛의 분위기에 핑계를 대곤 솔직해지기로 했다.
"이봐, 마리모. 우리.. 솔직해지기로 하자.
나는 네가 최선이 될 수 없다. 내게는 루피가 먼저야. 그 녀석에게 내 꿈을 맡겨두었단 말이다. 그 녀석이 세계 최고의 모험가가 되어서, 전설로만 전해졌던 내 어린시절의 꿈을 이루어준다고 약속했어."
"동의한다. 나 또한 검도로 세계의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맹세했지. 그 녀석은 내 정신적인 지주다. 1위는 바뀔 수 없어."
"그..그러냐... 그으럼 어쩔 수 없잖냐... 이게 무슨 감정인데... 나도 좀 어렵단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인지."
흐릿하게 뭉게지는 시야에 조로는 다급히 눈동자를 내려 상디의 눈물을 외면했다. 이렇게나 평행선을 달리는 사랑도 있을까.
이렇게나 순수하게 동경에 가까운 감정보다 사랑이 먼저일수는 없는걸까. 의문이 드는 가운데 조로는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으며 상디의 턱을 잡아 그렁하게 맺혀있음에도 고집스럽게 떨어지지 않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우리는.. 무슨 관계냐. 마리모.."
"...차선의 사랑이지. 서로가 우선시가 될 수 없는."
"차선."
나직하게 중얼거린 말에 마음에 들지 않느냐는 듯 익살맞은 웃음을 보인 조로의 노력을 보아서라도, 상디는 애써 눈꼬리를 휘고 입꼬리를 당겨 미소를 그려냈다. 보란 듯 힘겹게 지어진 미소에 조로의 눈썹이 일그러지고 이내 좁혀진 미간에 상디는 변명처럼 스스로에게 위로를 다독였다.
"차선의 사랑이란 말이지."
"그래, 왜. 항상 최선의 사랑만 했던 너에게는 좀 부족한 사랑인가?"
"푸핫! 그럴리가!"
그 순간 경쾌하게 터지며 언뜻 밤바람에 하느작 흔들렸던 금발을, 은빛을 품고 평생을 은빛에 취해 살아왔던 사내에게 지독할 정도로 찬연한 금빛을, 조로는 잊지 못할 것이었다. 그토록 상쾌한 웃음을 터뜨리곤 무어가 그리 웃긴지 한순간 가지고 있던 망설임마저도 내던질만큼, 가치있는 미소였다.
"결국 너도 나를 사랑한다는 거잖아? 그거라면 됐다. 난 또 차이는 줄 알았네."
"..너를 찰 수 있는 사람은 루피 외에 없을거다."
그 말은 지금 자신이 매력적인 것이냐며 으스대는 상디의 말을 시작으로, 그들은 어설프고 풋풋하지만. 이제는 확고하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차선의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서로가 최선이 될 수 없음에도 최소한 두번째로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두겠다고 약속한 사랑이었다.
최선의 사랑만을 고집해온 로맨티스트와 사랑과 낭만이라는 단어에서 무엇보다 멀었던 투박한 사람의 연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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