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_MOMO
 

*해당 글은 커미션 글입니다.
*최신화 스포 있을수도 있음


 
오지마라.
 
 
 
필요하다면 기꺼이 무릎을 꿇고서라도 애원을 해줄 수 있을만큼 간절하게 빌어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쿠잔이 사카즈키와 싸우고 그대로 해군을 나가버렸을 때. 그날 처음으로 엿본 사람의 실망이 얼마나 냉혹한지를 깨달아 그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너도 지금 내게 실망하고 있을까. 눈앞에 홀로 자신을 막아서 보겠다고 굳건하게 서있는 너를 비웃지 않는 게, 내 나름의 경의의 표현이었다.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그 이상의 고통이 덮쳐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옳으니까'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움직이는 사람.
 
 
뿌듯했다. 제자처럼 키우고 밤하늘의 빼곡한 별빛보다 내가 어설프게 퍼뜨린 인위적인 빛이 더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던 네가 뿌듯했다. 이렇게나 올바르게 자라서는 선의를 이유로, 네 나름대로 여러가지 증거와 받아온 마음들을 덜컥 내밀고 옳으니 행하겠다 당차게 고백하는 네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선의를 망설임없이 택하고 진실을 거리낌 없이 고르는 용기가 흐뭇했다.
 
 
동시에 지독하게 얽힌 감정이 반발처럼 뒤따라온다. 시기, 질투와 약간의 미움, 그리고 끊임없이 깊게 뿌리박혀버린 자기혐오가 옅은 잔상처럼 뒤따라오는 순간 저도 모르게 좁힌 미간을 센토마루는 어떻게 해석했을까. 초조함을 이유로 허겁지겁 선글라스 너머로 추잡한 눈동자를 숨겼을 때에는 힘차게 도끼를 휘두르며 내게 달려드는 네가 조금은 미웠다. 약간만 숙여줘도 괜찮았잖아, 너무 큰 벽이잖아.
 
 
 
"나는 전력으로 가르쳐줬을텐데, 센토마루 군..!!"
 
 
 
포기해. 내가 네 명예를 위해서 기꺼이 여기까지 와줬잖아. 어울리지도 상부의 명령에 토까지 달며 답지 않은 설득까지 하면서 너에게 와야할 이유도 만들어냈는데. 조금만 이해해줘서 항복한다고 말 한마디면 되잖아. 수없는 애원이 목끝까지 차오른다. 이렇게 끝내고 싶은 인연이 아니었다. 이렇게 끝나야할 인연이 아니었다. 나는 너보다 강하다. 너도 그 사실을 알고, 나도 그 사실을 알지. 분명 똑바로 알려줬잖은가, 넘을 수 없는 벽을 발견하면 돌아서 가라고. 구태여 그 벽을 부수는 짓만큼은 하지말라고. 어리석음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음 기회는 분명히 다시 생길텐데, 이번에 온 기회를 기어코 놓고 싶지 않더냐. 이번에 온 기회가, 베가펑크가 마지막 기회처럼 보였더냐. 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덧붙여 감싸안는 너의 잔혹한 애정이 내게는 닿지 않는건지 서러웠다.
 
 
 
"...다만."
 
 
 
네가 나를 이길 수 있을리가. 네가 쓰는 모든 기술들은 만들자마자 네가 자랑처럼 보여줬던 것들이다. 네가 쓰는 편법들과 움직임은 전부 다 내가 가르쳐주고 충고해준 것들이다. 너의 움직임, 호흡법 하나하나 내가 가르쳐주지 않은 게 없었다. 휘두른 도끼의 날이 허무하게 바닥에 박혔을 때 나는 그에게서 연민을 짓씹었다. 그렇게까지 대한다면 나도 더이상의 수가 없단 말이다. 널 죽이지 않는 것으로, 직접적으로 끝을 내지 않는 것만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마지막 가르침이다.
 
 
천천히 무너지는 센토마루의 몸을 바라보며 하나하나 여실히 자신이 새겨넣은 상처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품에 소중하게 쥐여져있던 위권칩을 들었을 때, 솔직한 심정으로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아직 괴물이 되고싶지는 않았다. 이미 수없이 손가락질당하고 괴물이라고 숱하게 들음에도 이 아이에게만큼은 살인자로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끝내지 않는다면 우연과 기적이 뒤섞여 살아날수도 있으니까. 쿠잔이 모른 척 눈감고 지켜주었던 어느 소녀처럼 너 또한 살려줄 이유가 충분히 있으니까.
 
 
스승처럼 두고 후회할 순간을 만들어내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마지막 가르침이라며 호쾌하게 웃어젖혔던 그 사람의 미소가 생각나는데, 옅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자꾸만 스멀스멀 기어나와 발목을 움켜잡고 다정하게 목을 졸라온다. 이러고 싶어 이러는 것이 아니오. 단호하게 중얼거릴 때마다 그럼 쿠잔처럼 자신처럼 나와버리면 그만이라 일갈해버릴 것 같은 상상이었다. 생생하기 짝이 없는, 그럼에도 좋으니 부디 한번이라도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상상이었다.
 
 
-쿵..쿵..
 
 
아직 미약하게 뛰는 심장소리를 있는힘껏 고개를 돌려 외면한 채 다음 전장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앞을 막아서는 소년을 바라보며 조금이나마 반가움이 올라왔다. 살아있었구나, 기어코 살아 이번에도 구원을 흩뿌리러 뛰어나왔구나. 또다시 내게는 닿지 않을 구원을 흩뿌리러 뛰어나왔구나.
 
 
 
"행실이 나쁘네."
 
 
 
이 전쟁에서 죽을 사람은 딱 하나다. 죽어야 할 이유도 명백하다. 반역. 우리는 결코 자유롭지 못한 몸인 것을 알고있지 않나, 베가펑크. 젊은 피가 끓는 센토마루라면 몰라도 베가펑크 당신은 멍청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대체 왜 세계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했지? 머저리 같은 짓거리를 하는 이유는 뭔가. 세계의 진실이니 뭐니 그런 소소한 전설에 매달릴 때는 이미 지나지 않았던가?
 
 
우리는 어른이지, 베가펑크. 숨겨놓은 진실들과 상부에서 가려둔 것은, 보지말라고 명령한 것과 다름이 없는데. 이 짓거리가 단순히 혼자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있지 않나. 우리의 등뒤에는 이제 우리의 그림자 뿐만 아니라 다른 자들의 생까지도 놓여있지 않은가. 우리의 손짓 하나에 끝날 목숨들을 생각해서라도 그게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있지 않은가. 그간 우리가 같이 보내온 시간이, 나누었던 이야기들과 쌓아온 추억들이 아직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왜 너희들이 사과 아저씨를 죽이고 싶어하는 건데!"
 
 
 
죽이고 '싶어'해? 그래서,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단 하나도 모르는 밀짚모자가 막아서기 시작했을 때 주제도 모르고 일침을 내뱉은 순간 안타깝게도 비수는 심장을 갈가리 찢어놓는 것보다 끔찍하게 박혔다. 죽이고 싶어할리가 없잖아. 인류의 꿈이라며 베가포스를 만들었을 때 그가 얼마나 환하게 웃었는지 너는 모르잖아. 건방지게 우리의 관계에 끼어드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게만 엄격하게 그어둔 선이 애타도록 간절해졌다. 차라리 압도적으로 강해서 나를 이겼으면 모를까 이렇게 안달나게 만들어버리곤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보여주는 그가 성가셨다.
 
 
 
다음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보였던 보니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지어졌던 미소 또한 이유를 붙일 수 있는 종류였다. 어렸을 때 보았던 얼굴 그대로였다. 딱 예상한대로 자라난 아이의 얼굴에 순식간에 피어오른 반가움은 눈앞의 상황을 잠깐 잊을만큼 그리웠다. 한순간 꿈꾸었던 미래의 조각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반가움에 허겁지겁 변명을 주워담아 내뱉은 말에 정면으로 반박해버렸을 때에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추락해버렸지만. 쉽게 행복해지려고 하지 말라고 사납게 질책하는 것 같다.
 
 
 
"내가 노려야하는 상대는 바뀌었어!"
 
 
 
대체 왜 오늘 내게 이리 잔인하게 구는건지. 지금껏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선글라스 너머로 숨겨두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복받치는 기분이었다. 나라고 괴물처럼 죄다 죽이고 싶을까, 내가 살린 아이란 말이다. 상부의 지시이기는 했지만 확실하게 아이가 살아갈 수 있도록 내 위명을 빌려주고 바다 건너서 소식을 분명히 들었던 아이였단 말이다. 빗겨친 레이저로 마침내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 배리어를 해제할 수 있다며 뛸듯이 기뻐하는 베가펑크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라면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해 일부러 "꿈의 거대 로봇"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별명까지 입에 담았다.
 
 
알아들으라고.
여기서 멈추고 너 하나만  죽으면 나머지는 다 살 가능성이 있어. 내가 그런 상황 정도는 연출해낼 수 있단 말이다.
 
 
 
"아~ 뜨거웠어."
 
 
 
벽이 부서지고 니카가 나왔을 때, 다시 한번 내지르고 싶었던 비명은 환호로 바뀌어있었다. 새하얗게 넘실거리는 증기와 머리카락은 수배서와 사진으로만 보았던 것과 달리 무척이나 황홀했다. 그래, 차라리 나를 압도해주기를. 내가 너를 막을 수 없었다, 너무 강했다, 가끔씩 고고학자들이 지껄이던 전설이 진짜로 튀어나와서 당황한 마음을 수습하느라 그랬다, 벌써 수십개의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가. 명분을 만들어내주기를 바랐다. 고막을 뒤흔드는 니카의 심장소리가 정말 쿠마가 말해주었던 것처럼 흥겨운 북소리에 가까워 자신도 모르게 조금, 설레었던 것 같았다. 자신이 그가 펼칠 구원 속에 없다고 하더라도 괜찮아질만큼. 이어지는 싸움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압도할 때마다 감히 희망을 품었고 승기를 잡을 때마다 초조해졌다.
 
 
 
이겨라. 나를 이겨.
네가 그 위대한 해방의 전사라면 나도 해방을 시켜달란 말이다. 지금껏 차려온 입장이니 뭐니 죄다 집어질 수 있게 해주기를. 족쇄처럼 복잡하게 꼬여있는 이 더러운 사축이라는 껍질을 벗겨버리고 충성을 보여야 살아남는 세계 따위 전부 다 부서지도록 주먹을 휘두르란 말이다. 네가 자랑처럼 내뱉었던 거인의 팔로 모든 것을 쓸어버려라.
 
 
 
그리고 이 뒤집힌 균형을 완전히 새로 써버리는거다. 해적왕이 될거라고 하지 않았나. 로저는 말 한마디로 새로운 전설을 써내려갔다. 너는 어떻게 할거지?
 
스타건에 맞고 벽에 박혔을 때 도리어 상쾌하게 퍼져나가는 고통에 자꾸만 미소가 새어나왔던 것 같다. 새어나간 미소가 새턴에게 들킬까봐 초조함이 물밀려왔을 때 이번에도 그들의 기적을 바랐다. 레일리처럼 기연이라도 나타나, 운명처럼 네 앞길을 가로막은 것들을 없애주고 있다면 이번에야말로 확실한 승기를 잡아라. 해군조차 널 건드리는 건 힘들겠다고 판단하도록 상징이라도 거머쥐란 말이다. 깐깐하기 짝이 없는 사카즈키가 이를 갈며 계산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너희들의 승리는 확정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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