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MOMO

 *해당 글은 커미션 글입니다.


살아온 인생이 결단코 평안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생이었다.
 
 
소녀는 눈동자를 굴려 거울 속 얼핏 비추어지는 제 모습에 얼굴을 와락 찡그리곤 들고있던 칼을 내던져 제 어미와 아비를 쏙 닮은 면을 산산히 부숴뜨리곤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심드렁히 닦아냈다. 착실하게 함께 먹었던 음식이 내장을 녹이고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나, 이쯤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소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정직하게 제 방으로 향하는 길 위에 올랐을 뿐이었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아련하게 퍼졌던 비명소리가 떠오른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하인들의 얼굴을 난도질하여 죽이고 심장에 나이프를 쑤셔넣어 피어오르듯 뿜어져나왔던 핏방울이 얼마나 경쾌했던가. 뜨겁게 치밀어오른 붉은색에 차분하게 내딛는 걸음은 얼핏 과거로 조금씩 되돌아가는 듯했다.
 
 
괴성을 내지르고 자신이 괴물을 낳아 길렀다며 손톱을 세워 달려들었던 친모가 악에 바쳐 쫓아와 내질렀던 비명이 줄곧 물속에 갇힌 듯 먹먹했던 고막을 뚫어주는 양 상쾌했었지. 한번에 죽지 말아달라 중얼거렸던 제 소원을 들어주기라도 한 듯 헐떡거리며 몰아쉬었던 숨이 끊기고 끈질길 줄 알았던 심장박동이 마지막으로 뛰었던 순간 아쉬움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또 한걸음.
 
 
저를 괴롭히고 모른 척 장난감을 내던지고 조롱했던 목소리들이 신음소리와 울컥 피를 내뱉는 소리로 바뀌었을 때에는 어찌나 기쁘게 웃었던가. 괴물이 태어났 어쨌다 소란스럽게 내뱉고 날세워 손가락을 펼쳐 가리켰던 그것들이 스스로 목을 조르며 괴로워하던 것을 보고 북이라도 치며 놀고싶은 심정이었다. 이복형제, 소녀의 또 다른 자매들이 무료하게 내뱉었던 말들이 비수가 되어 되돌아갔을 때에도 미나는 함부로 웃지 않았다.
 
마지막 걸음. 방문 앞에선 소녀의 기억 또한 최초의 행복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마침내 과거의 끝에 도달한 것과 같았다.
 
 
'도미? 물고기란 뜻이구나.. 아냐, 너는 미나다. 그런 투박한 단어는 고아한 너와 어울리지 않아. 너는 미나란다.'
 
 
 
다정스럽게 제 뺨을 쓰다듬어주고 사랑을 속삭였던 말들이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만큼 기꺼워 소녀는 기꺼이 미나가 되기로 했었다. 적어도 그녀가 저를 두고 몰래 도망치지만 않았어도 성질을 꾹 참고 미나로 살아줄 수 있었을 것이었다. 어쩌면 바란다면 평생을 그리 참아줄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니 마지막 기회는 그녀 스스로가 날린 것과 다름이 없으리라. 미나는 떨리는 손끝을 들어올려 제 방문의 손잡이 위로 손을 올려 힘을 주었다.
 
 
 
'설마, 그 녀석이 널 사랑했을 거라고 믿은 건 아니겠지? 아하하, 불쌍한 도미, 안타까운 도미! 물고기가 어항을 떠나서 살 수 있겠느냐? 물 없이 숨쉬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 네 물은, 네 집은 여기다. 헷갈리지말거라.
 
그딴 수족조차도 널 데리고 가지 않았다는 것은, 네가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금붕어와 다름이 없다는 뜻이겠지.'
 
 
 
간악하게 속삭였던 말을 조금이라도 더 주의깊게 들었다면 아마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을 것을. 떨렸던 거짓말의 잔재를 읽어냈다면 쉬이 미움을 마음에 들이지 않았을 것을. 친모처럼 이것저것 얼룩덜룩 색이 덧칠되어 끔찍한 흑발이었던 것과 달리 새하얀 머리칼을 흩날리며 곱게 웃어주었던 어미가 자신을 버리고 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을텐데도. 미나는 도미가 되어 추락했던 순간을 잊지 못했다.
 
 
사악한 세치 혀에 휘둘려 제 유일한 안식을 놓쳐버리고 원망한 스스로가 끔찍했다. 문을 여는 순간 보이는 익숙하고도 똑같은 풍경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날 듯하여, 다급하게 입술을 짓씹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 미나는 방 침대에 누워 끔찍한 스스로의 안식을 바라며 눈을 감았다.
 
 
 
입가에서 흘러나와 내장을 녹이는 피가 기도에 고여 죽도록, 자신이 놓아버린 사키의 선함을 쫓으며 홀로 고독하게 죽기를 기다렸다. 물론 죽는 일 따위는 없었지만.
 
 
기도가 막혀 고통스러울 때 발작처럼 내뱉은 숨이 거칠어 살아났고, 심장이 마침내 멈추었을 때 기뻐 환희했던 마음은 다시 힘차게 뛰는 소리에 다시 나락으로 떨어져내리는 듯했다. 그렇게 절망과 희망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던 미나에게 닿은 낯선 기척.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여리고 매정해진 소녀가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둘러싼 채 두런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검은색 정장의 사내들이었다. 어떤 이는 다급하게 설득이라도 하는 것처럼, 어떤 이는 진중한 표정으로 연심 저를 향해 아직은 다정한 눈동자를 흘끔거리며.
 
 
 
"역시 초재생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이건 흡사 불사조와 같은 능력이라구요, 이대로 놓치기에는 큰 손해입니다. 어차피 여기서 갈 곳도 없어보이는데 뭐 대수가 있겠습니까?"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아이가 싫다고 하면 강제로 데려갈수도 없는 노릇이야."
 
"언제부터 저희가 그런 걸 따졌다고. 애초에 이쪽은 웨스트블루이지 않습니까? 유독.. 이 바다에서는 매정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니, 상관없다 여길 겁니다."
 
 
 
투덜거리는 음성에 미나는 새빨간 눈동자를 도륵 굴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데려간다 말아야한다 하는 이야기에서 홀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미나가 마침내 입을 열어서 그곳에 가겠다고 답한 것은 무슨 이유였는지, 아직 소녀 자신도 정확하게는 몰랐다. 다만 하필이면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그 사내의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어른거려서, 자신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하니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단호하게 일갈하는 모습에서 사키를 엿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소녀는 온갖 꽃이 만발해 향기롭다 다채롭다 칭송받는 꽃의 나라에서 홀로 백일홍과 피에 물들여 시들어가던 백국화만을 담보처럼 쥔 채로 사나운 얼굴의 사내들의 뒤를 쫓기로 결정했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CP들을 쫓아 사법의 탑을, 제 새로운 보금자리로 삼곤 똬리를 틀기로 성큼 결정해버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미나는 제 몸의 비밀을 파헤쳐보겠다 당당하게 말하는 연구원의 뺨을 치고 조심스럽게 연구를 요청하는 연구소장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사법의 탑에서 흐르는 시간을 쌓았다. 그곳에서 보았던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눈을 깜빡거리고 지지 않는 해와 영영 타오르듯 환한 백야에 자신을 괴롭히던 끔찍한 밤은 오지않으리라 안온함을 누리며 살뜰한 성장을 해나가기로 했다.
 
 
 
온종일 붕대를 감고 고양이처럼 소리없이 다니는 그녀가 무서워서였을까, 세계최고의 사법기관이자 비밀스러운 요원들이라는 이름이 아깝게 CP들은 겁을 집어먹곤 그녀를 미라, 하나코상 등 온갖 별명을 가져다붙이곤 제멋대로 두려워하곤 했다. 그 꼴사나운 모습들을 보며 가끔씩 코웃음 한번 치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소일거리이자 소소한 재미였다. 그래서 그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으로 통하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순간 잠겨있던 문을 박차고 들어온 어린 사각 코의 소년에게 동그랗게 눈을 뜬 것은 아마 너무 놀라서였을 것이다.
 
 
 
"엇..? 자네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군감? 저 문이 열려있는 것도 처음보고! 오늘 처음 보는 것 투성이로군."
 
 
 
경쾌한 목소리. 미나는 입술을 비죽이며 제 눈앞에 환히 웃는 낯으로 아무렇지 않게 자네가 탑의 괴물이냐는 물음을 내뱉는 어린 사각 코를 쏘아보았다. 제 평온을 부수러 온 것인지 경계부터 내세우는 그녀에게 카쿠는 다시 한번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뿐이었다. 무작정, 자신이 먼저 대답을 꺼내기 전까지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 상냥함에 다시 한번 져준 것은, 어쩌면 사키와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온 세상의 다정함은 모두 분명 사키와 닮아있었기에.
 
 
 
"내 자네가 기밀대상이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네. 잘하였는감?"
 
 
 
그래서 평온을 방해한 어린 사각 코를, 미나는 퉁명스럽게 용서하기로 했다. 그래, 비록 그녀가 다른 아이들과 뒤섞여 성질을 건드리는 아이들을 모조리 식판으로 머리를 깨버렸어도 그녀는 카쿠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다만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저를 흘끔거리는 루치가 더더욱 신경이  쓰였을 뿐.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냉큼 빼앗아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당연하다는 듯 구는 그에게서 미나는 처음으로 호승심과 질투를 느꼈다. 다채로운 감정을 맛보았다.
 
 
남들이 자신을 볼 때 시선이 이러했을까, 싶은 의문이 들만큼 추하게 피어오른 질투에 모른 척 신나게 놀려대는 재브라와 카쿠의 손가락을 뒤로 꺾어버리고 나서도,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는 속에 미나는 부루퉁한 얼굴로 지건이나 몇번 날릴 뿐이었다.
 
그래, 정말 별것 아닌 질투였을 뿐이다. 후에 자신이 택한 선택에 비해서는 지금의 미나를 바라보자면 실로 별것 아닌 질투였다. 모두를 속시원히 떠나보내고 홀로 고독하게 사라져버린 그녀를 쫓으러 따라왔던 수십명의 CP를 떠올리자면 그러한 소소한, 질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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