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umgore
 
*해당 글은 커미션 글입니다.


우린 정말 완벽한 팀이야!
 
 
처음 만났을 당시와 똑 닮은 목소리, 그리고 한치도 달라지지 않은 어투에 벤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원수를 흘겨보았다. 원하는대로 인생이 흘러가면 너무 재미없지 않겠느냐는 무슨 빙고같은 말을 했을 때 홀딱 넘어가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나직하게 투덜거리며 지난날의 자신을 탓해보아도 과거의 자신은 심드렁한 얼굴로 그래도 썩 나쁘지는 않은 선택지였지 않느냐 제법 합리적인 반박을 내뱉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심란한 부선장의 마음 따위는 알바가 아닌 선장, 샹크스는 이번에도 발랄하고 쾌활한 웃음을 보이며 자신의 선택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다. 부선장 스카웃을 벤으로 하기 너무 잘했지. 아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서 자화자찬을 날리고 있을 때쯤, 철없는 선장의 머릿속은 그날ㅡ그러니까 벤은 그날이 악몽의 시작이라고 부르곤 하는, 다소 고집스럽게 우기는 그날ㅡ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 이름은 샹크스! 이제부터 내가 해적단을 만들건데 들어올래? 무려 대해적이 되실 몸이고, 해적왕의 자리까지 넘볼 테니까 지금같은 기회는 또 없을거라고? 대해적, 해적왕이 될 사내의 배에 오르지 않겠어?]
 
 
 
나중에 거절하고 후회해도 난 모른다며 뻔뻔스럽게 새파란 젊음을 내세웠던 그를 향해 벤이 무어라 답했더라. 자신의 대답보다는 먼저 눈에 찬란하게 박혀왔던 붉은색의 머리카락과 그 위에 올곧게 있어야 할 자리라는 양 바람에도 아슬아슬하게 날아가지 않았던 밀짚모자가 더더욱 기억에 남았기에.
 
 
황당할 정도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소년에게, 벤은 어렴풋 기억을 더듬어 냉정했던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 올렸다. 니가 뭔데 믿냐고 물었던가, 아니면 열심히 탐내보라며 냉소적으로 웃었던가.
 
 
아무튼 좋은 반응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기억 속의 소년은 그 말에 울상을 짓고, 이내 이게 아니라는 듯 초조한 눈동자를 도륵도륵 굴렸었지. 이어 조심스럽게 그럼, 부탁합니다? 라고 어설프게 나왔던 질문에 터뜨렸던 폭소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내게 해적질을 같이 하자고 권유하는거냐, 아니면 부선장으로 들어오라고 명령하는거냐.]
 
 
 
사납게 지적해온 문장에 소년은 모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이 아닌, 진지하게 그의 조언을 생각하며 골똘히 머리를 굴렸었다. 명령과 권유, 그리고 제안, 수십개의 단어들 사이에서 벤은 소년이 상하관계를 원할지, 동맹을 원할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으며 즐겁게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대답에 의해서 우리의 관계가 정의되고 그것이 마침내 니가 말한 그 해적단의 신념이 될테니까. 함께하는 존재가 동료인지, 부하인지조차도 판별하지 못하는 머저리 곁으로 가고싶지는 않았다.
 
 
신중하게 고민하는 소년의 인내심과 고뇌에 높은 가치를 매기며 벤은 그날 마지막으로 피울 담배를 아쉽게 태우며 다음에는 어느 곳으로 갈지에 대해서 고뇌의 방향을 돌렸다. 이 소년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언제든 기꺼이 곁에 두고 있었던 장총을 집어들고 냉큼 떠날 수 있도록. 그러나 소년의 입밖으로 나온 그 대답만큼은, 바다를 숱하게 겪어온 그에게조차 낯선 답이었다.
 
 
 
[내 해적단에 들어와, 동료가 되자는 뜻이야.]
 
[동료.]
 
[응. 친구같은! 때로는 보호자 같기도 하고? 아니면 뭐 부하 같기도 한? 역시 그래도 친구가 가장 좋겠지만! 아! 그럼 제안을 바꿔볼까?! 내 친구가 되어줄래?]
 
 
 
뻔한 대답에 실망스러워하며 장총을 집어들고 일어서려던 그를 붙잡은 것은,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샹크스의 덧붙인 말이었다. 오히려 친구란 표현에 보호자, 부하, 아예 결이 다른 것들을 덧붙여 놓고 한패라고 우기는 그의 말도 말이 납득이 안되는 종류의 것이긴 했다. 그러나 벤이 기다리고 있던 전혀 다른 대답, 예상에서 벗어난 답임에는 틀림이 없었기에 벤은 망설임을 지우고 픽 입꼬리를 끌어올려버렸다.
 
 
 
[내 이름도 모르면서 무슨 친구냐....]
 
 
 
그건, 사실상 승낙이었다.
 
조소에 가깝던 웃음을 용케 호의로 읽어내곤 그럼 앞으로 알아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환하게 웃었던 소년의 미소를 위해서 왔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나룻배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는 것도, 다음으로 맞이한 럭키루의 식비에 자신이 먼저 골머리를 썩혀야했던 일도, 철없이 저격수라며 안 그래도 좁은 나룻배에 동료 한명을 냉큼 물어온 선장의 귀를 잡아당기며 꾸짖었던 것도. 그 모든 관계 속에서 샹크스는 자신이 뱉은 말을 지켰다.
 
 
그들은 서로 각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꼬투리가 잡히는 즉시 신명나게 물고 뜯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씹어대는 친구였다. 익살맞은 말을 내뱉으면서도 누구보다 먼저 서로를 위해주는 보호자였다. 온 사방에 적을 두었다고 해도 겁나지않을만큼 든든한 동료였다. 동시에ㅡ, 단 한번만 제안하는 부선장 자리랍시고 호들갑을 떨었던만큼, 샹크스는 벤을 위해주었다.
 
 
 
누구보다 먼저 벤의 의견을 물었고, 항로를 결정지을 수 있는 권력 또한 그의 손에 쥐여주었고, 동시에 장난스럽게 가장 먼저 사고를 칠 권한도 쥐여주곤 했다. 결국 공범이라며 변명하기 위해 쥐여주는 권한이었지만 자신 또한 꽤 즐겼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속으로만 생각하던 말을 툭 두서없이 내던지고 공분을 얻어 같이 도망쳤던 것이 그렇게 기분 나빴던 일은 아니었으니까. 답지 않은 무례함에 괜히 고개를 먼저 숙여 인사하면서도 나직히 덧붙였던 샹크스의 속시원한 말에 몇번이고 간신히 웃음을 참아냈는지 모른다. 물론 그것도 몇번이었을 뿐 곧 그 역시도 터지는 웃음을 참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괜히 할머니의 시들어버린 꽃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려고 답지도 않은 두레박질을 오랫동안 한 것도, 해적이 이게 맞는 거냐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묻는 경험 또한, 분명 뻔한 선장을 따라갔다면 누리지 못했을 경험이었다. 전부 해적답지 않으면서 동시에 해적다운 일.
 
 
벤은 샹크스에게 그렇게 스며들듯 감화되어 버렸다. 이제는 빠져나오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이 들만큼 진하게 물들어버린 색이었다. 그러나 기껍게 받아들일만큼 마음에 들었던 색이었기에, 벤은 괜히 빠져나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샹크스의 색에 빠져들기로 마음먹었다.
 
 
 
-콰앙!! 쾅! 피유우...
 
 
 
지금처럼 고운 회상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것만 했어도. 벤은 눈동자를 굴려 누가 간을 배밖으로 내놓고 다니나 낯짝이라도 보기 위해 날아온 포탄의 궤적을 눈으로 쫓으며 포탄의 주인을 향해 감탄을 내뱉었다. 사황의 이름을 휘날리게 된지 얼마 안되었다고 이렇게 시비가 많이 털리다니, 역시 어린 선장을 앞세웠더니 만만히 보는건지 원.
 
 
 
"그게 무슨 말인데... 벤."
 
 
 
다소 불편한 듯 미간을 구기며 으르렁거리는 샹크스의 살기에도 벤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장난처럼 싸우고 진심처럼 치고받고 싸웠던 때도 한때였다. 그런 사소한 살기 하나에 움찔할 시기는 애초에 지나도 한참 지난 때라는 뜻이었다.
 
 

자신이 없으면 이 해적단이 제대로 안 굴러간다는 것도 확신이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그를 떠날리가 없었다. 뭐 죽인다면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탄식하겠지. 조금 더 오래 있고 싶었다고. 함께, 푸르른 수평선과 지독하게 넓어보였던 광활한 수면이 뛰어놀 초원마냥 보였던 찰나를 그리워하고 조금 더 이르게 그를 만나지 못했음에 탄식하겠지. 벤은 샹크스를 배신하지 못했다. 샹크스 또한 벤을 배신하지 않는다.

 
 

당연한 명제처럼 정해져있는 세계의 규칙에 벤은 흑안을 굴려 여전히 잔뜩 심통이 난 토라진 어린 꼬맹이를 바라보았다. 살의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도 이제는 닳아빠질만큼 오랫동안 보아왔는걸. 즉ㅡ, 벤은 샹크스의 투덜거림에 피익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스럽게 그의 불만에 시답잖은 농담을 날렸다는 것이었다.

 
 
 

"선장을 슬슬 갈아치울 때가 되었지. 미중년인 내가 마당얼굴 해주마. 선장 자리를 넘겨."

 

"우와아. 그런 말 되게 서슴없이 하다니, 나 상처받았을지도~"

 
 
 

너스레를 떨며 투덜거리는 샹크스의 뒤통수를 향해 입꼬리를 비죽 올린 벤은 그럼 역시 선장의 집나간 권위를 찾기 위해서는 날뛰어주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살살 꼬드겼고 보란 듯 넘어가선 금방 적선을 다 부수고 오겠다고 뛰쳐나간 붉은머리를 향해, 벤은 허파를 간지럽히며 폭죽처럼 터져나오는 웃음을 내지어야했다.

 
 
 

"으하핫! 루피보고 뭐라 할게 아니었잖아? 똑같이 애면서 말이지."

 

"음. 정말 애새끼랑 다름없었지. 조금 긁었을 뿐인데 냉큼 달려나가다니."

 

"아니거든! 걘 진짜 애고! 날 지금 열살도 못 먹은 녀석이랑 비교하는 건 아니지?"

 
 
 

그건 정말 너무한거야. 순식간에 갑판으로 되돌아온 샹크스의 인영에 벤은 삐뚜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샅샅이 샹크스의 상태를 확인했다. 좋아, 다친 곳은 당연하지만 없는 것 같군. 겁없던 루키들은 내놓은 간을 스테이크로 해먹었는지 잘 썰려서 널려있었고 배의 보물들은.. 살뜰하게 샹크스의 어깨와 남은 외팔에 충실하게 안겨있었다.

 
 

검은 코트 한가득 붉은 피를 묻히곤, 샹크스는 바람같이 되돌아와 벤의 말에 반박을 덧붙였다.

 
 

경악스러운 속도는 둘째치더라도 애인 것은 변함없다며 투덜거리는 사이 벤은 나직하게 미소를 지으며 반짝이는 조준경의 불빛을 잡아내고 순식간에 허리춤에 엉성하게 묶여있던 총을 꺼내 날카롭게 방아쇠를 당겼다. 더할나위없이 깔끔한 동작에 야솝이 휘파람을 불며 저격수는 이제 쓸모가 없는 것 같다 과하게 시무룩한 기색을 보이며 투덜거렸고 그 말에 심성좋은 럭키루가 쩔쩔매며 아무리 그래도 야솝만큼 멀리 있는 것을 쏘지는 못할 거라며 의미없는 위로를 다독였다.

 
 
 

"저런 피라미도 놓치고. 실력 떨어졌냐? 역시 선장 교체가..."

 

"아냐! 아니라고! 그냥 벤이 심심할까봐 혹시 몰라서 남겨둔거지!!"

 
 
 

절대 거기 안에 있던 술통에 눈이 팔린 게 아니야. 샹크스의 성의없는 변명에 벤은 나긋하게 눈꼬리를 저어 탄창을 끼웠다. 으음, 그렇군. 뭐 애초에 믿지도 않았다만. 차분하게 샹크스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장전된 총알의 갯수가 정확히 열두발임을 확인한 샹크스가 본격적으로 쏠 준비를 하는 벤의 결심을 가늠하고 한숨을 내쉰다. 이야, 탄창 다 비우고 주머니에 있는 것 싹 비울 때까지 쏘겠는데.

 
 
 

"음. 역시 안 믿을거지?"

 

"당연한 소리를."

 
 
 

느른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그의 물음에 긍정한 벤의 움직임이 신속하게 앉아쏴 자세로 변경되고 개머리판이 어깨에 견착되는 순간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긴다. 정확히 샹크스의 신출귀물한 움직임을 똑같이 따라 움직이는 총구 끝을 멈춘 것은 꽤 빠르게 이어지는 총성 사이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태연히 고기를 짓씹고 육즙을 즐기던 동료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낯으로 물어오는 럭키루의 질문 때문이었다.

 
 
 

"근데 선장, 벤이 진심으로 싸운 건 나도 본적이 없어서 좀 못 믿을 만하기는 하거든.총을 둔기마냥 쓰는 사람이 쏘는 걸 볼 때마다 좀 놀랍기도 하고. 야솝말대로 대체 부선장의 포지션은 뭐야? 저격수?"

 

"부선장이다만."

 
 
 

뻔뻔스럽게 자신에게 그 이상의 직위가 올라오는 순간 자신에게는 여자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빙긋 치명적인 미소를 발사한 벤의 얼굴에 럭키루는 진심으로 구토감을 느꼈다. 저 양반 얼굴에 과하게 자신감이 있어.

 

럭키루의 거부반응에 외려 자신의 얼굴이 취향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의문을 품은 벤이 뭇여성들의 심장을 난타하고 마음을 약탈해간 얼굴을 갸웃거린다. 청회색의 머리카락이 햇빛이 반짝이고 얼굴 전체에 고르게 난 잔주름과 훌륭하게 지나온 세월을 빛내는, 유독 찬란한 중년의 미를 보이고 있을 때 럭키루는 마침내 한번만 더 그딴 표정을 지었다간 오늘 선상반란을 일으키겠다는 협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지 얼굴 너무 잘 쓰네. 과하게 잘 쓰네.

 
 

럭키루의 질문에 여느때처럼 곰곰히 생각에 잠겨있었던 샹크스는 이내 럭키루의 의문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아니. 그으.. 벤이 그 정도도 못하면 부선장 자리는 이미 진작에 뺏기지 않았을까."

 
 
 

뜻밖의 문장에 럭키루의 눈이 둥그렇게 커진다. 금방 둥글게 휘어지며 익숙하게 안광을 선글라스 너머로 감춰버렸지만 그것이 휘어져있음에는 여지가 없었기에 벤은 뿌듯함과 흐뭇함을 느끼며 고개를 치켜올렸다. 아암, 그렇지. 내가 누군데. 무려 그 잘나신 사황 빨간머리가 직접 나와서 친구가 되어달라고 손수 부탁한 부선장이란 말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해군 대장 하나, 어쩌면 둘쯤은 저지할수도 있을만큼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음. 그렇지. 그것도 그렇네."

 
 
 

의문이 해결된 듯 시원스럽게 웃는 럭키루와 그럼 할말 끝났으면 마저 쏘겠다며 시원스럽게 빈 탄창을 뽑고 새 탄창으로 갈아끼우려는 벤을 막아세운 것은 유독 날카롭게 느껴지는 기척들이었다. 단번에 예민한 기감들을 드러내며 고개를 돌린 벤은 간만에 고동치는 심장박동에 여상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아, 활력이 느껴졌다. 뚜렷하게 드러내는 적의에 간만에 전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떠중이들이 아닌 모양인데... 어떻게 할까?"

 

"음. 내가 가지."

 

"뭐? 왜!!? 나도 싸우고 싶은데! 내가 하고 싶은데!"

 
 
 

우렁차게 벤의 출장을 질투하는 샹크스의 만면을 곱게 손바닥으로 밀어 럭키루에게 던져버리다시피 밀어낸 벤은 눈꼬리를 휘어보였다. 선장은 선장, 떠중이 찾아온다고 냅다 달려나가서 맞이해줄 정도는 아니야. 권위의식을 좀 가지라고. 벤의 충고에 샹크스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해사한, 그때와 전혀 다름없는 미소를 지어보인다. 똑닮은, 붉은머리를 햇빛이 찬란하게 반사시키며 흘려왔던 피보다 더 붉고 루비보다 광채를 드러내던 그 미소를.

 
 
 

"선장 취급은 사실 벤이 가장 잘 안하고 있잖아?"

 
 
 

그때랑 똑같이 속 뒤집어놓는 소리도 하고. 벤은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며 장총을 힘주어 거머쥐고 천천히 갑판으로 나섰다.

 
 
 

"샹크스, 앞으로 한달 동안 술은 구경도 못할 줄 알아라."

 

"뭐?! 아니, 잠깐!! 너무해!! 미안!! 미안하다고!!"

 
 
 

다급하게 내지르는 샹크스의 사과와 이미 늦었다며 냉큼 벤의 뜻을 알아차리고 후딱후딱 술 저장고부터 비워버리는 럭키루였다. 하마가 와도 이 정도로는 못 마시겠는데? 싶을만큼 아예 들이붓다시피 술통을 비우는 럭키루와 명령이라며 어설프게 그만 마시라고 울상을 짓는 샹크스, 이어 깔깔 웃으며 럭키루의 행동과 벤의 명령에 즐겁게 동참하는 선원들을 등뒤로 바라보며, 벤은 미소지었다. 자신이 영원히 사랑할 풍경이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완벽하게 자신이 지켜낼 풍경이었다. 당연하게 맞이할 또다른 일상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총을 치켜드는 것이 그렇게 기껍지 않을리가.

 
 
 

벤은 그렇게 수월히 잔잔하기 짝이 없는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며 호기롭게 빨간머리 해적단을 박살내겠다는 붉은머리를 향해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머리다. 샹크스의 것처럼 찬란하지도 않고 그저 혈기와 생기로만 가득 찬 주제에 어설프기까지 한 그런 순간. 그런 순간에는 이곳이 아니라 좀 더 허들이 낮은 곳을 들렀어야지. 뭐, 어쩌겠나. 무지한 후배를 혼내주는 것도 선배할 짓인 것을. 그렇지?

 
 

유스타드 캡틴 키드. 고집스럽게 붙여놓은 캡틴이라는 글자를 친절하게 붙여 불러주며, 벤은 제 손아귀에 뜯겨져나가 있는 키드의 팔을 간신히 숨만 허덕이며 덜덜 떨고 있는 마스크 남자에게 던져주었다. 깨진 마스크를 어떻게든 붙잡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자 했던 그의 고집에는 약간의 배려를 발휘해 대충 모른 척 고개를 돌려주었다.

 
 

그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었으니까. 샹크스에게도 그러한 것이 있었으니까. 벤은 아직도 선장, 이라는 단어에 이따금 견딜 수 없이 지독한 공허함을 보인다는 것을 안다. 새빨간 돛을 보며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안다. 누군가 화려하게 새로운 시대를 열고 죽어버린 처형식이 되돌아오는 날 헛숨을 들이키며 급하게 일어섰던 악몽을 안다.

 
 
 

그렇기에 벤은,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게 럭키루도, 야솝도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섬세하게 샹크스의 악몽을 덮어줄 것이고 붉은 돛을 치워버릴 것이었으며 그날이 되돌아왔을 때에는 모른 척 더더욱 깊은 잠에 빠지도록 선원들을 일찍 재울 것이었다.

 
 
 

언젠가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우리의 명성이 희미해져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

 

그때가 되어도 벤은 일상을 똑같이 맞이할 것이다. 변함없이 낡고 색이 바래버린 풍경 속에서 마침내 언젠가 그가 꿈꾸었을 대사를 읊조리며 낭만적으로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같은 꿈을 쫓았다면 같은 끝을 꿈꾸는 것도 옳지 않겠는가? 벤 또한 샹크스가 끝을 그리고 있듯 그 역시 이상적으로 바라던 미래가 있었다.

 
 

너에게는 트라우마가 될지도 모르지만 결국 우리 같은 족속들이야 남는 자들이 되는 법이지. 샹크스는 먼저 떠나는 자가 될 것이었다. 등에 덕지덕지 붙은 것은 신경쓰인다며 훌쩍 떼어놓고 해맑게 웃으며 그리 떠날 것이었다. 어찌 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마지막은 웃으며 갈 것이라고 확신하며. 벤은 그때에 비로소 자신의 역할을 '부선장'에서 '불멸의 파트너'로 바꿀 수 있을 터였다.

 
 

네가 죽고도 나는 죽지 못해 불멸의 칭호라는 모욕을 받을 것이고네가 죽고도 나는 네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해 파트너로써 영원히 살아갈 것이니까.

 
 

이어질 생애에 단 한번도 나는 붉은색을 잊지 못하리라.또한 샹크스 역시 이어질 평생을 통들어 청회색을 잊지 않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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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OMO

*해당 글은 커미션 글입니다.



서로가 최선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의 사랑은 무엇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해서 상디는 언제나 씁쓸하게 입가에 익숙한 미소를 띄워올리고 그런 종류의 사랑 또한 있는 거 아니겠냐며 너스레로 넘어가버리곤 했다. 자칭 희대의 로맨티스트이며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고 습관적으로 말하고 다니는 그 역시도 진정으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꽤 당황스러워하는 얼굴로 우물쭈물거리며 쉬이 답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가 쉬이 답하지 못한 이유는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실로 그러한 종류의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첫만남을 떠올리라고 한다면ㅡ

아마 그는 어느 초여름날 슬슬 뜨거워져가는 날씨에 불만스럽게 땀이 난다고 중얼거리며 가게 문을 나섰을 때를 꼽을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날은 제프가 감기에 걸린 날이라서 유독 신경이 날카로웠던 날이었다.





"젠장, 뭐 그런 독한 감기가 다 있고 그래? 몸도 못 일으킬 정도로 지독한 열이라니, 그러게 진작 건강검진도 꼬박꼬박 받으러 가라니까는."





걱정 섞인 말을 내뱉으며 익숙하게 가게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들어올린 셔터 아래로 보였던 어쩌면 익숙하다고 평할지도 모르는 그러한 신발의 모습. 상디는 의아함을 품으며 고개를 들어올렸고 그곳엔 자신과 비슷한 색을 품은 새카만 눈동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와아아악?!?!!"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기겁하며 서로 뒤로 물러섰을 때 상디는 보기좋게 세워두었던 메뉴판을, 낯설지만 익숙한 남자는 허리에 묶어두었던 목도를 부러뜨리며 허겁지겁 자신의 놀란 마음부터 쓸어내리기에 바빴다.




"으악! 내 메뉴판!! 이거 쓰느라 내가 몇시간을 날렸는데!?"


"내 목검! 제기랄, 너 내가 이걸 얼마나 신경써서 관리했는지 알아!?"


"알게뭐냐! 그딴 거!"


"뭐!? 나도 그딴 거 알바 아니거든!? 니 메뉴판이 부서지든 말든 내 상관 아니라고!"


"네놈 때문에 놀라서 부러뜨린 거잖아!"


"나도 니놈 때문에 놀라서 부러뜨린거야!!"





물론 그 직후 각자가 해놓은 짓거리에 불현듯 정신이 든 것처럼 날카롭게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시작했지만. 생각해보면 그게 아마 그들의 첫 번째 만남이라고 칭해도 될 정도로, 강렬한 만남이었다.




신명나게 서로 기척을 확인하지도 않고 냅다 셔터를 올린 네 잘못이다, 누가 셔터 올리는데 그곳에 서있으라고 협박했냐 등 까내기에 바빴던 그들은 그저 이 만남을 최악이라고 회고하곤 했다.



하필이면 그날 왜 그런 놈을 만나서는, 서로에게 되새긴 욕설과 비슷한 비난을 비웃듯, 운명을 그들을 떨어뜨려놓을 수 없다는 듯 기가막히게 이리저리 만나게 만들어놓곤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다음엔 함께 다니는 친구들의 소개로. 졸지에는 처음으로 꿈을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할만큼 진심으로 따르고 싶었던 남자의 소개에까지 도달했을 때, 마침내 그들은 체념이라는 것을 학습하기로 했다.




유치찬란하기 그지없는 기싸움에도 그저 그들을 만나게 하고 덥썩 앉혀놓은 장본인, 루피는 웃음을 터뜨리며 너희는 참 재미있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천진난만하게 호칭에 대한 것을 칭찬하곤 했다. 그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이를 악물고 으응, 이라며 떨떠름하게 답해야했는지는 그들 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동경하는 대상이 겹쳐서 가지고 있는 질투, 비슷한 감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라면, 자신이 그런 형편없고 싸가지 없는, 일명ㅡ서로에게 동일하게 가지는 감정이었지만 알게뭐람, 상디와 조로는 이미 서로에게 내뱉는 무례한 언행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합의한 상태였다. 이미 가차없이 까내렸던 첫 인상에서 그 이상 떨어질 이미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설령 존재했더라도, 그들은 굳이 이미지를 잡으면서까지 서로에게 정성을 들이고 싶어하지는 않았다ㅡ예의없는 그놈에게 미약하게나마 두근거린 심장이 설명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건 분노로 인한 것이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애정과 친애와 관련되지 않은 마음이어야했다. 스스로도 아마 어렴풋이 알고 있었겠지만. 상디는 으레 처음 사랑에 빠진 상대들이 그렇듯, 자신의 마음을 필사적으로 외면해놓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가진 것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디, 그 뿐만이 아니었지만.





"제기랄. 내가 왜..!! 그딴 놈을 신경쓰고 있어서는..!!"





수련에 방해가 될 정도로 어렴풋 떠오르는 금발머리의 잔상에 조로는 다시 한번 힘차게, 힘이 과하게 들어간 어깨근육을 움직이며 불필요한 동작이 뚝뚝 묻어져나오는 어설픈 검을 휘둘렀다. 겨우 떠올리는 것 하나만으로 이렇게나 정신력이 흐트러져서는, 조로의 얼굴이 찡그려지고 곧 이성은 교육받은대로 차갑게 금발머리를 싫어할만한 이유를 주르륵 나열하기 시작했다.





첫만남부터 무례하게 외모에 대해서 지적했다. 음, 이건 안타깝게도 본인도 했던 짓이라 아무래도 싫어할만한 이유보다는 그가 자신을 싫어할 이유가 될 것 같았다. 기각이로군.



목검을 부러뜨렸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괜히 자신이 놀라서 스스로 넘어지다가 부러뜨린 것이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가 부러뜨린 건 아니었다. 또한 상디 역시 자신의 메뉴판을 부숴먹었으니 오히려 그걸로 따지기에는 다시금 쌍방이 되어버리곤 했다. 원점이었다.



그렇다면, 시시때때로 시야에 들어오는건? 이것 역시 기각이다.


네 생각이 나서 수련을 못하겠으니 다른 곳으로 꺼져달라고 말하기엔, 조로는 안타깝게도 상디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심상수련을 하고 몇번이나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명상에서는 슬프게도 한쪽 눈을 가린 찰랑거리는 금발과 여성에게 무척이나 신사적으로 대접하면서 제게는 미소 한줌 보여주지 않는 괘씸한 요리사가 한명 가득 채워질 뿐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은근한 마음을 드러내곤 또 밀어내는 것을 반복, 그들은 마침내 옅고 닳은 술기운과 달빛의 분위기에 핑계를 대곤 솔직해지기로 했다.




"이봐, 마리모. 우리.. 솔직해지기로 하자.

나는 네가 최선이 될 수 없다. 내게는 루피가 먼저야. 그 녀석에게 내 꿈을 맡겨두었단 말이다. 그 녀석이 세계 최고의 모험가가 되어서, 전설로만 전해졌던 내 어린시절의 꿈을 이루어준다고 약속했어."


"동의한다. 나 또한 검도로 세계의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맹세했지. 그 녀석은 내 정신적인 지주다. 1위는 바뀔 수 없어."


"그..그러냐... 그으럼 어쩔 수 없잖냐... 이게 무슨 감정인데... 나도 좀 어렵단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인지."





흐릿하게 뭉게지는 시야에 조로는 다급히 눈동자를 내려 상디의 눈물을 외면했다. 이렇게나 평행선을 달리는 사랑도 있을까.


이렇게나 순수하게 동경에 가까운 감정보다 사랑이 먼저일수는 없는걸까. 의문이 드는 가운데 조로는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으며 상디의 턱을 잡아 그렁하게 맺혀있음에도 고집스럽게 떨어지지 않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우리는.. 무슨 관계냐. 마리모.."


"...차선의 사랑이지. 서로가 우선시가 될 수 없는."


"차선."





나직하게 중얼거린 말에 마음에 들지 않느냐는 듯 익살맞은 웃음을 보인 조로의 노력을 보아서라도, 상디는 애써 눈꼬리를 휘고 입꼬리를 당겨 미소를 그려냈다. 보란 듯 힘겹게 지어진 미소에 조로의 눈썹이 일그러지고 이내 좁혀진 미간에 상디는 변명처럼 스스로에게 위로를 다독였다.




"차선의 사랑이란 말이지."


"그래, 왜. 항상 최선의 사랑만 했던 너에게는 좀 부족한 사랑인가?"


"푸핫! 그럴리가!"





그 순간 경쾌하게 터지며 언뜻 밤바람에 하느작 흔들렸던 금발을, 은빛을 품고 평생을 은빛에 취해 살아왔던 사내에게 지독할 정도로 찬연한 금빛을, 조로는 잊지 못할 것이었다. 그토록 상쾌한 웃음을 터뜨리곤 무어가 그리 웃긴지 한순간 가지고 있던 망설임마저도 내던질만큼, 가치있는 미소였다.




"결국 너도 나를 사랑한다는 거잖아? 그거라면 됐다. 난 또 차이는 줄 알았네."


"..너를 찰 수 있는 사람은 루피 외에 없을거다."





그 말은 지금 자신이 매력적인 것이냐며 으스대는 상디의 말을 시작으로, 그들은 어설프고 풋풋하지만. 이제는 확고하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차선의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서로가 최선이 될 수 없음에도 최소한 두번째로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두겠다고 약속한 사랑이었다.


최선의 사랑만을 고집해온 로맨티스트와 사랑과 낭만이라는 단어에서 무엇보다 멀었던 투박한 사람의 연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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